포르투갈의 리스본

2013. 6. 17. 10:42여행

리스본은 글쎄 한 6개월은 있어 보아야 그 진가를 발견할 수 있는 도시가 아닐까?   


런던, 파리, 로마 등 유럽의 대도시의 화려하고 웅장함에 익숙한 여행자라면 처음 리스본에 도착한 순간 약간 실망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한국에서 출발하면 비행기를 한번 갈아 타고 대부분의 경우 밤 9시나 10시 경에 도착하게 된다.  리스본 공항은 시내 중심가에서 차로 한 10분 정도 거리에 있는데 도착하는 비행기는 시내 중심가를 통과해야 활주로에 착륙할 수 있게 되어 있다.  낮게 나르는 비행기에서 내려다 본 시내 풍경은 글쎄, 가로등이 다른 대도시에 비해서 어둠침침한 것 같고, 큰 건물이 별로 보이지 않아 어딘가 초라하다는 느낌을 들게한다.


유라시아 대륙의 서쪽 끝의 작은 나라 포르투갈의 수도인 리스본은 그리스, 로마시대부터 존재했던, 유럽에서는 가장 오래된 도시 중의 하나이다.  15세기 후반의 대항해 시대에는 신대륙 발견과 교역의 중심으로 한때는 유럽 대륙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였다.  이 도시는 포르투갈이 신대륙과 아시아 무역의 주도권을 영국과 네델란드에 빼았기면서 쇠퇴의 길로 접어들기 시작했는데 1755년의 대지진으로 도심 대부분이 파괴되고 설상가상으로 19세기 초 나폴레옹의 침략으로 한 10년간 시련을 겪으며 최대의 식민지였던 브라질이 독립하면서 유럽의 변방국으로 전락하게 된다.


20세기초 왕정이 무너지고 한 60년 정도의 군부독재와 고립주의 후 80년 대에 와서야 유럽과 교류를 시작한 후 EU에 가입하였고, 동구국가들이 EU에 가입하기 전에는 EU의 보조금을 가장 많이 받는 나라 중의 하나였다.  포르투갈 국토 중앙 대서양 연안에 위치한 수도 리스본의 공식적인 인구는 약 50만 정도 된다고 하는데 주변의 위성도시의 인구를 합하면 3백만이 넘는 유럽에서는 상당히 큰 도시이다.  학창시절 역사시간에 배운, 최초의 세계일주 대항해의 주인공인 마젤란, 희망봉을 발견한 바아돌로뮤 디아즈, 인도항로 개척의 바스코 다 가마, 브라질을 발견한 페드로 알바레스 카브랄, 그리고 이 모든 모험을 기획하고 지원한 항해왕 엔리케 왕자 등등의 찬란한 업적을 상기하면서 리스본에 도착하면 그 소박함에 다소간 실망감을 감출수 없게 된다.


우리같이 오가는 뜨내기들이 찬란했던 과거의 영화와 현재의 쇠퇴함을 보면서 착잡한 감정을 느낄 정도니 훌륭한 조상의 위업을 이어 받지 못한 후손들의 마음은 어떻겠는가?  포르투갈 사람들은 선조들의 위업을 이어받지 못하고 유럽의 소국으로 전락하고 더구나 경쟁상대인 스페인에 비해서 여러 면에서 뒤처지는 현재의 자신들의 모습에 집단 스트레스 같은 것을 느끼는 것 같다.  어찌된 일인지 정치적인 리더십도 신통치 않아 이 나라는 관광과 농업 그리고 약간의 경공업 이외에는 이렇다 할 산업이 없는데 정부에서 장기 비전을 세우지 못하고 EU의 보조금을 토목공사와 부동산에 집중적으로 지원하고, 공공부문의 구조조정을 미루다 오늘과 같은 금융위기를 맞게 되었다. 


재작년인가 오래간만에 출장을 갈 기회가 있었는데, 당시 금융위기로 긴축재정이다, 구조조정이다, 대량실업이다 엄청난 사회적인 혼란을 겪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포르투갈 사람들은, 다른 남유럽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저축이나 노후 준비에 큰 관심이 없다.  낙천적인 성향에 기인하기도 하고, 과도한 사회 복지의 혜택 때문이기도 한데, 월급을 받으면 잘 쓴다.  이곳의 월급날은 보통 매월 25일에서 30일 사이인데 매월 15일 쯤 되면 시내의 차량 숫자가 눈에 띄게 줄어든다. 월급을 거의 다 쓰고, 자동차에 기름을 넣을 돈이 부족해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하기 때문이라나.... 돈 쓰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쇼핑몰에는 항상 사람들로 붐비고 활기가 차 있었는데, 지난 번 출장 시 잠간 쇼핑몰에 가보니 너무 사람이 없고 썰렁해서 깜짝 놀랐고, 정말 착잡한 마음이 많이 들었다.  당시 해외에서 근무해서 직접 겪지는 않았지만 금융위기를 경험한 나라의 국민으로 느끼는 동병상련의 감정인가, 아무튼 빨리 이 위기를 벗어나야 할텐데....


리스본의 중심은 마르케스 퐁발 광장일 것이다.  1755년 리히터 9도의 어마어마한 지진으로 대화재가 발생하고  지진에 따른 쯔나미가 리스본을 강타하여 3 ~ 4만명이 사망하고, 리스본 구 도심의 대부분이 파괴되었다.  당시 수상이었던 퐁발 후작도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후 대지진에 견딜 수 있는 설계로 다시 도시를 건설했는데, 오늘날 마르케스 퐁발 광장, 레스타우도레스 광장, 루시우, 코메르시우 광장으로 이어지는, 오래된 멋진 가로수가 늘어서 있는 격조있고 넓은 길과 주변의 아름답고 고풍스러운 건물들은 250년 전 그의 선견지명을 보여 준다. 그리고 로시우 부근에서 아기자기하고 좁은 골목길을 한참 올라가서 사옹 조르제 성에서 시내의 전경과 저 멀리 펼쳐지는 떼주강의 장관을 내려다 보면, 왜 이 사람들이 대양의 항해에 나섰는지 알 수 있을 것도 같다.


리스본에서 꼭 해야 할 일은 먹는 것이다. 과거 에스쿠도라는 화폐를 사용하다 유로화로 통일한 후 가격이 상당히 오르기는 했지만 포르투갈은 유럽에서 가장 저렴하게 맛있은 음식을 즐길 수 있는 나라이다.  우리나라에도 맛있는 생선 요리가 많지만 솔직히 말해서 아마도 포르투갈 사람들이 세계에서 생산을 가장 잘 굽는 사람들이 아닐까?   여름에 가장 즐겨 먹는 생선은 사르디냐 그렐랴도, 우리나라 정어리와 비슷한 생선인데 보통 식당 밖에 숫불 화덕에서 포르투갈식 석쇠로 구워 주는데 특별한 양념을 하지도 않고, 그냥 기름을 바르고 몇번 뒤집었다가 내오는데 그 맛은 천하진미이다.  한 여름에 리스본 인근 부둣가 생선구이 전문점에서 작열하는 태양 아래 파라솔 그늘에서 하우스 와인이나 맥주와 함께 먹는 그 맛은 정말 둘이 먹다가 하나가 죽어도 모를 지경이다. 그밖에도 우리나라 가자미와 비슷한 링구아도 그렐랴도, 갑오징어 튀김인 쇼쿠 프리투 등등......   


구운 생선이 실증이 날 때 쯤이면 얼음을 깔은 큰 쟁반에 나오는 조개, 새우, 게, 소라, 고동의 프라토 드 마리스코, 따뜻한 음식이 먹고 싶다면 우리나라 어죽과 비슷한 아로즈 드 마리스코, 이제 해산물은 정말 못먹겠다는 마음이 들면 돼지 머리, 내장, 소시지등을 양배추, 홍당무 등등과 함께 푹 고아 요리한 코지두 아 포르투게사가 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다 좋아하는 통돼지 구이인 레이타옹도 물론 아주 맛있게 먹을 수 있다. 나라가 작고 외진 곳에 있어서 그렇지 알고 보면 정말 요리의 천국이다. 


한번은 아귀 등 각종 생선과 채소에 토마토 소스를 넉넉하게 넣고 끓인 카타플라나라는 냄비요리를 먹은 적이 있는데, 여기다 고추가루와 매운 고추를 송송 썰어 넣으면 꼭 우리나라 매운탕 같을텐데.... 아쉬워하면서 식사를 했는데, 다음날 그집에 다시 가서 같은 음식을 주문하면서, 고추가루, 매운 고추를 추가해 달라고 부탁을 했다.  그랬더니 잠시 후에 산전수전을 다 겪은 것 같이 보이는 멋있는 주방장이 나오는 것 아닌가.  그는 자존심에 상당한 상처를 입은 듯, 분개한 어조로 카타플라나를 자신의 방식과 다른 방법으로 요리하는 것 범죄행위와 마찬가지라고 하는 것 아닌가?  깜짝 놀라서 손이 발이 되도록 빌면서 동양의 촌놈이 실수했다고 사과할 수 밖에 없었는데, 아무튼 현지 문화를 존중해야 한다는 좋은 교훈을 얻은 적이 있었다. 


포루투갈은 대서양 연안에 있기는 하지만 겨울에 온난 다습하고 여름에는 고온 건조한 전형적이 지중해성 기후의 국가이다.  여름 낮은 우리나라같이 끈적 끈적하게 덥지는 않지만 섭씨 30도가 훌쩍 넘어가는 날이 많은데 그래도 저녁 때만 되면 어김없이 선선한 바람이 불어서 우리나라와 같은 열대야 현상은 없다.  저녁 때 리스본 교외인 벨렝이나 카스카이쉬 해변가의 아기자기한 식당의 시원한 바람이 부는 테라스에 앉아 인간미 넘치는 종업원들의 정성스러운 서비스를 받으며 맛있는 해산물과 함께 시원한 화이트 와인을 즐기면서 대서양의 낙조를 바라보고 있을 때....  Life is beautif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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