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5. 18. 14:48ㆍ여행
톨레도는 마드리드 남쪽으로 한 시간 정도의 거리에 있는 역사적인 도시이다. 또한 세르반테스의 명작 동키호테의 무대로 한국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라만차로 가는 길목에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패키지 투어에 약방의 감초 격으로 일정에 포함되는 인기가 높은 도시이다.
나는 92년인가 처음 톨레도를 방문했는데 그때 거래선에서 잡아준 호텔에 크게 감동한 적이 있었다. 옛날 15세기의 귀족의 저택을 개조한 호텔이라 한다. 15세기라면 우리나라 세종대왕 시절 정도 될텐데 이렇게 오래된 문화적인 유산을 호텔로 마구(?) 사용해도 될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더구나 그때는 우리나라의 형편이 그제서야 조금 좋아져 문화재 복구같은 급하지 않은 사업에 막 관심을 갖기 시작할 때라 출입을 제한하는 곳이 많아, 문화재는 보기만 하고 고이 고이 보존하는 것으로 알고 있어 더욱 신기했다. 요즘은 우리나라에서도 오래된 건물의 개조하여 식당이나 고택체험에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져 고무적이다. 문화재라는 것은 그저 보는 것보다는 실생활에 이용해야 그 가치가 더 있는 법.
외국에서 손님이 오면 서울 수서동에 있는 필경재라는 한식당을 자주 이용하곤 했는데 그 식당의 건물이 한 500년 전에 세종의 후손이 지은 것으로, 처음에는 조금 서먹할 수 밖에 없는 외국인과의 식사 전 이야기를 시작하는 화제로는 그만이다. 또 그러다 보면 우리의 옛 건축물에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게 되는 긍정적인 마음가짐을 갖게도 된다.
톨레도의 그 호텔은 상당히 높은 담장으로 둘러 쌓여 있고 로비에 들어서면 박물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중세시대의 철갑 갑옷 장식이 벽난로 양쪽에 서서 손님을 맞는다. 로비의 커다란 가죽소파와 카페트, 그리고 은은하게 풍기는 가죽냄새와 시가의 향기, 남성적이지만 부드러운 분위기가 여행자를 포근하게 감싸준다. 객실도 고풍스러워 육중한 나무 문을 열고 들어서면 바닥에는 스페인식 갈색 타일이 깔려 있고 침대, 커튼 그리고 멋있게 생긴 가죽 소파 등 만만하게 볼 것이 하나도 없다. 그리고 창 밖의 중정은 자그마하고 아름다운 분수와 잘 손질된 아랍식 정원으로 손님의 눈을 즐겁게 한다.
톨레도는 원래 이베리아반도를 지배하던 북아프리카의 무어족의 중심 도시였다. 그 후 이슬람 교도를 몰아낸 카스틸라 왕국의 수도였다가 마드리드로 수도를 옮긴 후에 크게 발전하지 못하고 정체된다. 하지만 그 덕분에 도시는 중세시대 성벽과 내부 모습을 거의 그대로 보존하게 되어서 지금은 수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관광지가 되었다.
톨레도에 처음 도착하면 푸에르타 비사그라라는 성문이 원형 그대로 관광객을 맞고 언덕 위로 올라가면 울장한 대사원과 언덕 아래 흐르는 타구 강을 볼 수 있다. 이 강은 서쪽으로 흘러 포르투갈의 수도 리스본을 지나 대서양으로 흘러들어 간다고 한다. 여기서 리스본까지는 아무리 작게 잡아도 한 700km는 될 것 같은데, 그리고 리스본 부근의 타구 강은 폭이 넓은 곳은 한 10km는 족히 될 큰 강인데 여기서 보니 언덕 아래 흐르는 자그마한 하천에 불과하다.
톨레도는 왕궁과 사원의 웅장함도 볼거리이지만 잘 보존된 중세의 거리와 이곳에서 많은 작품을 남긴 르네상스 시대의 화가 엘그레코가 스토리의 중심이다. 엘그레코는 원래 그리스의 크레타 출신으로 - 엘그레코는 그리스 인이라는 뜻의 그의 별명이다- 이탈리아에서 활약하다가 스페인으로 온 것. 이 사람이 돈과 권력에 관심이 많은지 이탈리아에서는 부자나 왕궁의 후원을 제대로 받지 못하다 스페인 국왕의 초대를 받아서 16세기 후반에 스페인으로 이주했고, 우선 톨레도에서 작품활동을 시작하였다.
그는 국왕의 명을 받아서 몇 점의 작품을 만들어 국왕에게 바쳤으나 그 그림이 국왕의 취향과 달라서인지 관심을 끌지 못한다. 원래는 톨레도에는 잠시 머물고 돈과 명예를 쫓아 수도인 마드리드로 진출하려고 했지만 마땅한 후원자를 찾지 못한 그는 울며 겨자 먹기로 톨레도에 정착할 수 밖에 없었다.
그후 그는 마음을 비우고 톨레도에서 창작에 몰두했는데, 이 때 그린 그림들이 요새 말로 대박이 난 것.
그의 명성은 스페인 전역에 퍼졌고, 굳이 마드리드에 진출할 필요가 없이 그의 그림을 원하는 후원자들이 톨레도로 몰려 오기 시작한 것.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몰두하고 열정을 바친다면 돈과 명성은 부수적으로 따라 온다는 진리를 다시 한 번 보여준 예이다.
마을 곳곳에 어느 기념품 상점에 가도 온통 엘그레코의 초상화, 그의 작품화보, 작품집들이 있고, 그의 이름을 딴 아주, 아주 우아한 스페인식 건물의 미술관이 관광객의 발길을 끈다. 톨레도는 한편 과거 중세 시절에는 무기와 중무장 갑옷의 산지로도 유명했는데 가지고 갈 수 있다면 갑옷 한 벌을 가지고 가도 좋으련만..... 그럴 수는 없고 관광객들에게는 중세시절의 디자인으로 제작한 단검과 권총이 매우 잘 팔린다.
지금은 모르는 사람이 없지만 총과 칼은 비록 모형이라도 비행기 기내 휴대품으로 들고 탈 수는 없다.
이렇게 설명을 하지만 우리 회사에는 한국에 도착해서 짐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어려운 성질 급한 분들이 많아서 몰래 휴대품으로 들고 탑승하려다 적발되어서 현지 공항에 두고 오는 경우가 비일 비재했다. 내가 포르투갈에 근무할 때도 이따금 리스본 공항에 모형 화승총이나 칼을 두고 왔는데 찾을 수 없겠는가 하는 어려운 부탁을 받고 난처한 경우가 꽤 있었다.
이제 마지막으로 톨레도에 가본지도 한 10년이 넘었는데 한번 다시 가보고 싶다. 아마도 도시 자체는 크게 변한 것이 없겠지만 지나 다니는 사람들은 중국인과 러시아 사람들로 바뀌지 않았을까? 그리고 옛날보다는 조금 더 시끄러워지지 않았을까?
사진: Tim Snar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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