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5. 18. 14:13ㆍ여행
1453년 5월 29일 메멧 2세는 두 달 간의 피비린내 나는 공격 끝에 동로마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을 함락하고 지난 150 년 동안의 오스만 터키의 숙원을 달성한다. 콘스탄티노플을 수도로 정한 그는 1459년 기존의 비잔틴 제국의 궁전을 버리고 이슬람 양식의 톱카피 궁전을 건설한다.
그후 수세기 동안 이 궁은 확장을 거듭했으나, 후대의 오스만 터키의 술탄들은 보스포러스 해엽 주변의 새로운 궁전에서 기거하는 것을 더 선호하게 되고, 결국은 1856년 프랑스의 베르사이유 궁전을 모방해서 건설했다는 돌마바체 궁전으로 영구히 본궁을 이전한다.
전성기 때 이 궁에는 약 4000 명의 사람들이 거주했다고 하는데, 술탄과 후궁들, 제니사리라고 불리는 근위병, 화폐를 발행하는 조폐청과 그 직원, 병원, 베이커리 등등, 그 자체로 작은 도시의 역할을 충분히 했다.
이 궁을 돌아 보면 다른 나라의 궁과는 다른 점을 발견할 수 있다. 동양과 서구의 궁의 공통점은 권위를 상징하는 지붕과 기둥이 상당히 강조된다는 점이다. 웅장한 지붕과 장엄하고 화려한 기둥을 통해 지배자들의 자신의 권위가 하늘로 받은 것이라는 것을 강조하면서 일반인들을 건물이 주는 위압감으로 압도하면서 자신들의 권위를 재확인하기를 원했던 것은 아닐까. 그런데 이 궁은 지붕과 기둥을 강조하지 않아 매우 여성적이고 따뜻한 느낌을 준다.
그리고 궁이 여러 술탄을 거치면서 증축을 거듭하여서 중앙의 압도적인 중심 건물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이 궁은 행정구역과 왕의 개인 거주지역 등 몇 개의 구역으로 나누어져서, 가장 외각은 궁을 경비하는 제니세리가 주둔했다. 제니세리는 터키가 정복한 발칸 반도의 기독교도의 아들들을 유년 시절에 강제로 노예로 사들여 이슬람 교로 개종시키고, 군사 훈련을 시켜 최정예의 부대를 구성하였다. 제니세리가 되면 혹독한 훈련을 거쳐야 하며 결혼도 금지되었다. 그들은 17세기 터키의 동유럽 정벌 전쟁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지만, 오스만 터키의 집권 세력의 힘이 약해지면서 정치에 개입하기 시작하여 수차례 술탄을 갈아 치우는 전횡을 저지르다 19세기 초에 해체되고 만다.
오스만 터키의 술탄을 믿을 수 없는 이야기이지만 정식 부인이 없다. 역대 술탄은 각 지방의 아름다운 소녀들, 주로 오늘날의 동유럽이나 발칸 반도의 소녀들을 노예로 데리고 와 자신의 하렘을 이루었다. 후궁이 술탄의 자식을 낳으면 지위가 높아지고, 그 자식이 술탄이 되면 그 술탄을 낳은 후궁이 궁중의 총책임자가 된다. 그러니까 모든 술탄은 어머니가 노예이며 대부분 유럽인이라는 이야기가 된다.
오스만 터키 왕실의 문제점은 그것 뿐 만이 아니다. 왕조 초기는 술탄의 아들 중 가장 능력이 있는 왕자가 왕위를 계승하게 되어 있었다. 이는 초원에서 유목 생활을 하는 민족에서 출발하여 소아시아의 여러 작은 나라를 정복하며 팽창하던 시대에는 적합한 제도이다. 그러나 오스만 터키가 아프리카, 중동, 동유럽을 아우르는 대제국이 된 후 술탄이 직접 전쟁에 참전하는 상황은 점점 줄어 들고, 단순히 군사적인 능력 뿐만이 아니고 관리자로서의 덕목이 왕위계승자에게는 필요하게 되었고, 이렇게 복합적인 덕목을 평가하기에는 이 단순한 제도가 적합치 않게 되었다.
한편 전쟁에 나가서 공을 세울 기회가 줄어든 왕자들은 왕위 계승에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해서 궁중에서 파벌을 조성하여 17세기 부터는 왕자들 간에 끊임없는 왕권 쟁탈을 위한 분규가 있었다. 17세기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 왕위게승법을 개정했는데, 이 새로운 법은 오스만 터키 멸망의 한 원인이 된다. 새 법은 왕위의 계승은 술탄의 아들이 아니고 술탄이 사망할 당시 왕가의 가장 손위의 남자가 왕위를 계승하도록 규정했다. 따라서 17세기 이후에는 술탄의 아들이 왕위를 계승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고 주로 술탄의 남동생이나 사촌 심지어 삼촌들이 왕위를 계승하는 일이 잦았다. 이런 왕위계승 후계자의 대부분이 통치자와는 비슷한 연배이거나 조금 젊은 왕족들인데 언젠가 왕위를 계승할 경쟁자들을 술탄이 가만이 둘리가 있겠는가?
재위 중의 숱탄들은 왕위를 계승할 만한 왕족들을 견제하기 위해서 톱카피 궁이나 다른 곳에 이들을 외부와 접촉하지 못하도록 반연금 상태를 유지했다. 그래서 이들은 수십년 동안 외부와 단절된 생활을 하고 정규적인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곤 했다고 한다.
그러니 새로운 술탄은 어머니가 외국 출신의 노예이고, 자신은 외부와의 접촉을 금지 당하고 수십 년 간을 연금 상태에 있었던, 정서적으로 정상인이 아닌 가능성이 많은 사람들이다. 북아프리카, 중동, 소아시아와 동유럽을 아우르는 대제국의 통치자를 육성하는데는 절대로 적합한 제도가 아니고 어떻게 누군가가 나서서 이 제도를 개선하지 않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왕궁에는 건물의 아름다움과 함께 이스탄불 유럽지역을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좋은 전망이 관광객의 눈을 즐겁게 한다.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없는 오스만 터키의 보물, 무기, 각종 예술품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크다는 술탄의 왕관을 장식한 다이어몬드 등 볼 것이 많기도 하고, 또 주위에 조금만 걸으면 저 유명한 Grand Bazar, 불루 모스크 같은 세계적인 유적지를 볼 수 있다.
무엇 보다도 좋은 것은 주변에 다양한 스타일의 터키식 식당이 많아 큰 돈 들이지 않고도 맛있는 터키 음식을 맛볼 수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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