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에사르의 리더십

2012. 2. 18. 10:43리더십

기원전 55년 율리우스 카에사르는 오늘날 독일의 코블렌츠 부근의 라인강 서안에 진을 치고 고민에 빠져 있었다. 당시 로마의 간접적인 영향권에 들어와 있던 갈리아 (라인강 서안과 스페인 사이의 지역)의 여러 부족을 로마제국의 통치하에 두려면 우선 안전을 보장해야 하는데 라인강 동안에 거주하고 있던 게르만 족이 끊임 없이 강을 건너서 갈리아의 부족에 대한 약탈을 자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카에사르는 게르만 민족에게 로마군단이 언제라도 마음만 먹으면 라인강을 건너서 그들을 응징할 수 있는 능력을 과시하기를 원했다. 배를 타고 군단이 강을 건너는 것은 그답지 못한 행동이라고 생각한 그는 강을 가로 지르는 다리를 건설하기로 결심하고 휘하 장군들에게 명령을 내린다. 이런 예상 밖의 결정에 장군들은 대경실색하여 맹렬한 반대를 하였으나 카에르는 결심을 굽히지 않는다. “강의 빠른 물살, 깊이, 넓이 등 모든 이유를 들어서 장수들은 반대하였으나, 그는 이 계획은 꼭 실행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래야만 그는 앞으로 휘하의 로마군단을 제대로 통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De Bello Galico – Julius Caesar) 

 

그는 주위에서 다리 공사에 필요한 목재를 채취한지 10일만에 다리 건설을 완료하고 강을 건너 인근의 게르만 민족 대파하고 로마군단에 대한 뿌리 깊은 공포심의 씨를 뿌리고 개선한다. 통일 전 독일 수도였던 본 부근의 코블렌츠는 오늘 날 라인강 유람선의 근거지로 활기 있는 관광지가 되었는데 이곳에서 라인강을 보면 “강폭이 적어도 200미터는 될 것 같은데, 이렇게 수량이 풍부하고 강이 깊은 지역에 뭘 믿고 오직 사람의 힘으로 다리를 놓을 생각을 했을까? 어떻게 그 당시에 10일만에 다리를 완성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에 빠지게 된다. 

 

카에사르는 우리 신라시대의 성골쯤에 해당하는 유서 깊은 줄리우스 가문에 태어났으나 40세 이전에는 두각을 나타내지 못한다. 그는 독재자였던 가이우스 마리우스의 조카로 마리우스를 축출하고 권력을 잡은 루키우스 술라의 견제로 여러 곳에서 망명생활을 하다 술라가 죽자 로마로 돌아와 크라수스, 폼페이우스와의 삼두정치로 권력의 한 축을 장악하게 된다. 그는 BC 56년 갈리아 총독으로 임명되어 그 당시 로마의 느슨한 영향권에 들어 있었던 오늘날의 프랑스와 베네룩스 삼국 지역을 확고한 로마의 통치하에 두기 위한 정복전쟁을 시작한다. 

 

아마 이때가 그의 커리어의 황금기로 그는 항상 로마군 보다 3 ~ 4배 많은 갈리아 족, 게르만 족과의 전투에서 연전 연승하였는데 이 전투의 기록은 그가 직접 기술한 갈리아 전기 (De Bello Galico) 잘 나타나 있다. 그는 위에서 언급한 다리 건설이라든가, 상상을 초월한 빠른 군단의 이동, 신속한 진지 구축으로 적의 의표를 찌르곤 했다. 무엇보다도 그는 자기 부하들이 가지고 있는 잠재적인 능력을 이해하고 그것을 필요할 때 잘 활용하는 지도자가 아니었을까? 그 휘하 군단의 병사들은 카에사르와 함께 싸우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겼고, 카에사르가 많은 희생이 따를 수 있는 어려운 결정을 앞두고 고민할 때 언제나 어려운 임무에 자원하는 부대가 있었다. 

 

카에사르는 휘하 군단에게 임무를 부여할 때 언제나 이 임무가 조금 벅차지 않을까? 과연 우리가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하는 수준의 임무를 부여했다. 비록 몇 번의 실패가 있어서 그의 몇몇 군단은 압도적인 수의 적군에게 포위되어서 몰살을 당하기도 했지만 이러한 일련의 결정들이 그 휘하 군단을 당시에 세계 최강의 부대로 만들었던 것에 틀림없다. 이 모든 것은 아마 그가 사람을 신뢰하고 그 사람의 잠재적인 능력을 꿰뚫어 볼 수 있는 탁월한 능력을 타고났던 것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바람기가 많다는 애교스러운 매력도 가지고 있는 그는 사람을 믿고 자기를 따르는 사람들에게는 항상 지나칠 정도 관대하여 그 결과 항상 많은 부채에 시달리고 했는데, 이 부채 때문에 고민했던 흔적은 전혀 없으니 아마도 모든 것이 잘 해결될 것이라는 낙관론자가 아니었을까? 그는 자신이 믿었던 마르쿠스 부르투스에게 살해 당하기는 했으나 대중을 위한 그의 정책은 그가 믿었던 또 한 명의, 후계자인 옥타비아누스에게 계승되어 로마의 제정을 열게 된다. 

 

루비콘 강을 건너서 폼페이우스의 군단을 격파하고 로마에 진군한 카에사르는 당시 승리한 장군에게 주어지는 최고의 영광인 개선식을 거행하게 된다. 이 개선식은 전투에서 노획한 포로와 동물, 보물과 함께 화려하게 중무장한 보병과 기병이 대오를 짜서 행군을 하게 되는데, 그렇게 엄숙한 분위기는 아니었다고 한다. 군단병의 행군은 위풍당당할 때도 있지만 장난스러운 분위기도 강했고, 병사들이 일제히 큰 소리로 정해진 구호를 합창하곤 하는데 카이사르의 개선식에서 군단병들이 외친 구호는 이것이었다. 

 

 “시민들이여! 마누라를 숨겨라 대머리 난봉군이 나가신다!” (로마인 이야기 – 시오노 나나미) 

 

멋진 리더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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