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의 가치

2013. 5. 3. 09:00리더십


한 7 ~ 8 년전쯤에 우리는 미국의 고객으로부터 인도 공장에서 생산될 새 자동차 모델용 부품 프로그램을 수주한 적이 있었다.  당시에는 해외의 고객들은 인도에서 생산될 자동차의 부품은 다른 지역에서 개발을 하는 것이 관례였다.  고객은 당시 유럽에서 인기 있는 모델을 인도 실정에 맞게 개량하여 출시할 예정 이었고, 우리는 우리의 유럽 자매기업에서 개발한 부품의 기초 설계를 기반으로 인도 기후에 맞는 부품을 개발하게 되었다. 그런데 있는 제품의 설계를 변경하여 다른 시장에 출시하는 것이 아예 그 시장에 맞게 처음부터 백지 상태에서 개발하는 것보다 더 어려울 때가 많다.  이 프로그램은 고객의 경우 미국, 인도, 독일, 호주의 개발과 생산 조직이 참여하였고, 우리 측은 한국, 영국, 인도의 조직이 참여하게 되었다.  이런 복잡한 이유로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이 처음부터 강조 되었고, 나는 그래서 내 휘하의 가장 경험이 많은 차장을 프로그램 매니저로 기용하였다.


그런데 프로젝트를 시작하자마자 문제가 발생하였다.  우리 연구소의 엔지니어들이 컴퓨터로 시뮬레이션 해본 결과 고객이 우리에게 준 제품의 성능 목표가 비정상적으로 높다는 것.  이것 때문에 제품 기초 설계가 전혀 진행이 되지 않고, 상호 신경질적인 메일을 주고 받는 상황이 벌어지게 되었다.  과거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지만 결국은 타협점을 찾은 경험이 많으므로 나는 개발 초기에 주도권을 잡기 위해서 실무 레벨에서 벌이는 신경전으로 생각하고 별다는 행동을 취하지 않았는데 한 달이 넘도록 문제가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것 아닌가?  우리 직원에게 보고를 받아 보아도 고객이 양보하는 것 외에는 별다른 방법이 없는 것 같고, 고객 측에서도 상부에 보고를 했는지 고객사의 임원이 나에게 직접 메일을 보내서 우려를 표시하고 내가 직접 개입하여 문제를 해결할 것을 강력하게 요청하게 되었다.  


나도 뾰족한 해결 방법은 없고, 문제는 해결해야 하니 일단 모든 관련자의 이야기는 들어 볼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어렵게 고객와 우리 측 모든 관련자들이 참석하는 전화 회의를 소집하고 이 회의에서 처음부터 하나 하나 다시 짚어가기로 하였다.  문제의 핵심은 시속 55km 의 주행 상태를 컴퓨터로 재현했을 때 우리 제품의 성능이 목표에 미달한다는 것.  이야기가 본론에 도달하자 양측은 다시 팽팽히 맞서서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문제의 본질을 좀더 확실하게 하기 위해서 이 55Km 의 속도가 3단 기어의 상황인지 4단 기어의 상황인지 확인을 하였는데, 앗! 우리 측은 4단 기어의 상황으로 이해하고 있었고, 고객의 기준은 3단 기어로 운행 하는 것이었다.  우리 제품은 엔진의 회전 속도에 따라서 성능이 달라지는데 엔진 회전 수가 낮은 4단 기어로 운행하는 것으로 시뮬레이션 했으니 성능이 떨어진다는 예측 결과가 나온 것.  그렇게 하여 문제를 간단하게 해결했고, 그 이후에도 여러 가지 문제가 있었지만 성공적으로 개발을 마칠 수가 있었다.


지금은 자동변속 차량이 대세이기는 하지만 같은 속도에서 기어가 높으면 높을 수록 엔진 회전 수는 감소한다는 것을 모르는 운전자는 없을 것이다.  우리 회사는 이 부문에서 세계 3 ~ 4위 정도 되는 기술 집약적인 회사이고 개발에 참여한 엔지니어들은 박사 학위 보유자를 포함 모두 경험이 풍부한 사람들인데 어떻게 이렇게 중학생 정도의 지식을 가진 사람이면 피할 수 있는 실수를 한 것일까?  


1997년 8월 어느 날 대한항공 801호는 태평양의 미국령 괌 공항에 착륙을 시도하다 공항 부근의 산에 추락하고 만다.  문제의 원인은 악천후에도 불구하고 기장이 육안에 의한 착륙을 시도하다 공항 뒤의 산을 활주로로 착각한 것.  사고 직전에 부조종사와 항법사는 문제가 있는 것을 발견했으나 기장에게 강력한 경고를 하지 못하고 있다가 참변을 당한 것. 자기 목숨이 걸려있는데 말을 못하고 죽다니!!!  이 사고 이전에도 대한항공은 소련 영공을 모르고 들어 갔다 총격을 받고 불시착 하거나, 사할린 상공에서 소련 공군의 사격을 받고 격추되거나, 서울 김포, 상하이, 포항, 런던, 리비아 트리폴리, 제주도에서 사고가 났다. 90년대 대한항공의 사고율은 미국의 대표적인 항공사인 유나이티드 에어라인 보다 17배가 높았다.  대한항공도 사고를 방지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사고가 나면 세밀한 진상조사를 통하여 원인규명을 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보고하는 절차를 반복하였지만 사고는 끊임 없이 일어 났고 급기야는 파트너 사인 델타와 에어프랑스는 대한항공과의 제휴를 중단하고, 주한 미군 사령부는 휘하 장병들과 그 가족들에게 대한항공 탑승 금지령을 내렸다.


급기야는 당시 김대중 대통령이 대한항공의 안전문제는 국가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이슈라고 비판하고 해외 방문시의 대통령 전용기를 아시아나 항공으로 변경시키는 조치를 취했다. 위기의식을 느낀 대한항공은 델타항공 출신의 그린버그를 운항담당 사장으로 고용하여 대대적인 개혁에 나섰는데, 그린버그가 한 가장 중요한 조치는 조종실에서 사용하는 언어를 승무원의 국적에 관계 없이 영어로 통일하고 승무원의 안전 훈련을 미국의 회사에게 맡겼다.  한국어는 유교문화에 기초를 두고 있어서 상사의 권위에 위배되는 표현을 하는데 적합지 않고, 조종석의 승무원 각자는 훌륭한 능력을 가지고 있으나 권위적인 기장에게 자신의 의견을 명확하게 표현하지 못하는 것이 많은 사고의 원인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당시 한국인 비행사의 숫자가 부족한 것도 원인이 되겠지만은 상당 수의 외국인 조종사를 고용하여 조종석을 덜 권위적인 분위기로 바꾸었다.  그 후 약 15년, 지금 대한항공은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항공사 중의 하나로 인정 받고 있다. 


그 외에도 기업이나 공공기관에서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이 되지 않거나 권위적인 상사, 혹은 상명하복, 일사불란한 행동을 중요시 하는 기업 문화 때문에 대형사고가 일어나는 경우를 너무나 많이 목격했다. 우리 회사도 2 ~ 3년에 한번 씩은 시장에서 큰 사고가 일어나 회사가 발칵 뒤집히곤 했는데 내용을 들여다 보면 원인은 모두 비슷 비슷하다.  제품을 개발하거나 외주 업체를 선정할 때 절차에 의해서 해야 할 검증을 제대로 하지 않아 문제를 미리 걸러 내지 못하고 시장에 출시된 후 한참 후에 몇 백 배의 문제로 폭발하는 것.  그런데 테스트를 생락하면 문제의 가능성이 커진다는 것을 모르는 직원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대부문의 경우 지켜야 할 일정이 있고 일을 제대로 하는 것 보다는 일을 제시간에 끝내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기업 문화가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자그마한 우려의 목소리는 다수의 큰 목소리에 파묻혀 들리지 않게 되는 것이다.


요즘은 많은 대기업들이 사내의 소통을 위해서 별도의 리더십/커뮤니케이션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운영하기도 하고, 외부에서 코치를 고용하여 임원과 팀장에게 소통의 리더십을 배양하도록 지원하고 있다.  이런 프로그램이 성공하려면 전체적인 분위기가 변해야 하고, 특히 최고위층 경영진 사이에서도 상사에게 직언을 해도 안전하다는 의식을 확고하게 심어주는 것이 가장 중요할 것이다. 특히 이런 고위 임원들은 과거 개발 시대에 직장 생활을 시작하여 농담이기는 하지만 오너와 임원은 주인과 머슴의 관계라는 의식이 바탕에 깔려 있고, 이제 나이도 5 ~ 60대로 기존의 소통 문화를 바꾸는 것이 정말 어려울 것이다.  과연 삼성의 이건희 회장에게 부하 사장 중에 누가 ‘당신을 틀렸소’ 라는 직언을 할 수 있을 것인가?   하지만 회사의 진정한 변화를 원한다면 최고위층 자신부터 변화해야 한다. 어색하기도 하고, 시간도 많이 걸리고, 때로는 실패도 하겠지만 최고위층부터 소통을 시작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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