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 상황

2013. 1. 16. 09:14리더십

7 ~ 8년 전 추석 때의 이야기이다.  나는 추석 때면 해외출장을 다니곤 했는데 그해는 고객과의 약속에 마지막 순간 변경이 생겨서 다행히 집에 있게 되었다.  추석 날 아침 어딘가 마음이 뒤숭숭하며 메일을 열어보니 뜻밖에도 영국의 고급차 메이커인 J사로부터 메일이 와있는 것이 아닌가?  보통 이런 메일은 나쁜 소식을 담고 있는 것이 보통이라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았다.  메일의 요지는 우리가 공급하고 있는 자동차 부품의 재고가 바닥이 나서 이틀 후면 J사의 조립라인이 정지할 위험이 있으니 내가 나서서 해결해 달라는 것.

 

아니!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이야기 인가?  나는 부랴부랴 팀장과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 멀리 가지 않아 쉽게 통화가 되었다.  내용인즉 재고가 바닥이 난 것은 사실이지만 고객이 재고 파악을 잘못해서 생긴 문제이고, 지금은 추석이라서 우리도 어떻게 할 수 없으니 J사에서 조립 모델을 변경해 달라고 요청하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정말 재고가 바닥이 났다면 누구의 책임에 관계없이 대형사고 아닌가?  좀 더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 부품은 우리가 자체에서 생산하는 것은 아니고 외주품이라고 한다.

 

나는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를 사태가 악화되는 것을 막아야 하겠다는 생각과 함께, 추석 연휴는 앞으로 이틀이나 남았는데 그때까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고객 생산라인이 정지하는 것을 기다리기만 하는 것은 올바른 태도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우리 회사의 구매담당 임원에게 전화를 걸어서 사정을 설명하고 외주업체 공장을 가동시켜 내일 아침까지 부품을 공수하는데 협조해 줄 것을 부탁하였다.  내 이야기를 들은 상대방은 펄쩍 뛰었고 나는 협박 반, 회유 반 그를 설득하여 점심 때 쯤 지방에 내려가 있던 외주업체 사장과 연락을 하여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생산을 시작하기로 하였다.  그런데 직원들이 모두 뿔뿔이 흩어져 있으니 이것도 생각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다.

 

느닷없이 날벼락을 맞은 외주업체 사장은 부랴부랴 연락을 하기 시작하였고, 그때부터 나는 노심초사하면서 직원들이 제 시간에 돌아오기만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모처럼 연휴를 맞아 나의 봉사를 기대했던 아내와 딸들도 나의 이상한 행동에 숨을 죽이며 기다릴 수 밖에 없었는데 다행히 자정쯤 작업을 해야 하는 직원들이 모두 돌아와 생산을 시작해서 다음 날 아침 일찍 영국으로 가는 비행기에 우리 부품을 실어 보낼 수 있었다.

 

몇 년이 지난 후에 나는 때때로 사람들과 이 에피소드에 대해서 이야기 하곤 했는데 그 때마다 그 팀장과 담당자는 방어적으로 변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결과가 해피엔딩을 끝나고 나에게는 긍정적인 기억으로 남아 있는 사건이 그들에게는 부정적인 기억으로 각인되어 있었던 것이다. 내가 의도적으로 그들을 야단친 적도 없는데 말이다.

 

코치가 된 지금 왠지 그때의 에피소드가 이따금 생각이 난다.  내가 그 당시 다르게 행동했다면 무엇을 어떻게 다르게 행동했을까?  그때는 위기 상황이라 담당자를 배제하고 내가 북치고 장구치고 다할 수밖에 없었고,  담당팀장과 담당자에게 나쁜 이야기는 하지 않았지만,  아마 그들은 전체 외기 상황에서 방관자나 조역의 역할을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과연 그럴까?  내가 혼자서 다 하는 것이에는 방법이 없었을까?  과연 부하들을 방관자로 만든 것이 올바른 리더십인가? 

 

내가 좀 더 기다릴 수 있었다면 어떤 행동이 가능했을 것인가?  내가 자신에게 한 10 ~ 20초의 시간을 더 주었다면 아마 나는 다음과 같은 행동을 하지 않았을까; 그들은 그때 이미 2 ~ 3일간 고객과 생산성 없는 논쟁을 하고 있었을 텐데 추석이라 상사에게 보고도 하지 못하고 얼마나 노심초사 하고 있었을까?  그들이 그때까지 한 행동은 실무자 레벨에서는 합리적인 행동이었다고 공감을 했을 것 같다. 그리고 내가 느끼는 초조함, 불안감을 이해 시키고 나의 입장이나 CEO의 입장에서 상황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면 그들은 위기상황에서 자신은 실무자이지만 때로는 CEO의 입장에서 전체 상황을 볼 필요도 있다는 귀중한 교훈을 얻을 수 있었을 것 같다.

 

물론 추석휴가 한가운데서 외주업체 직원의 휴가를 취소하고 작업을 시키는 것은 실무자나 팀장 레벨에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들이 결정과정에 같이 참여하고 위기를 해결할 때 좀 더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면 아마 그들은 이 에피소드가 긍정적인 기억으로 남아 있을 것이고 아마 다음에 비슷한 상황이 올 때는 좀 더 시의 적절하게 상사에게 보고하고, 상사가 어려운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고민할 때 힘이 되어주면서 좀 더 크게 성장할 수 있지 않았을까?

 

 

PS: 이 이야기를 쓰는 동안에도 그때 추석 휴가를 취소하고 공장으로 복귀한 얼굴도 모르는 많은 분들이 나를 얼마나 원망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죄송한 마음과 후회가 나를 사로 잡는 것을 느낀다.

 

 

'리더십'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열린 질문  (0) 2013.03.08
공감   (0) 2013.01.16
효과적인 피드백  (0) 2013.01.14
혼이 있는 공장  (0) 2013.01.12
칭찬  (0) 2012.1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