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11. 7. 15:39ㆍ여행
내가 카이로를 처음 찾은 때는 1982년 가을. 당시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근무하고 있었는데 카이로 부근 현장에서 회의가 있어서 3박 4일로 다녀왔다. 그때는 안와르 사다트가 암살당하고 호스니 무바라크가 막 집권하여서 민생안정에 주력하고 있었었는데, 이때를 전후해서 한 10년이 - 이스라엘과 평화협정을 맺고 서방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경제적 성장을 추구한 시기 - 이집트 근세 역사상 그래도 안정된 기간이 아니였을까? 공항에서 카이로 시내로 향하는 차에서 받은 인상을 도시가 매우 생기있고 사람들이 활기차다는 것. 조금 어수선하기는 했지만 당시 전두환 정권 초기에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었던 우리보다는 잘살고 있다는 느낌도 받았다.
그로부터 30여년을 훌쩍 넘어서 다시 카이로를 찾기로 했는데 사실 여행을 계획하면서 이따금 간간히 들려오는 테러 소식 때문에 고민이 많았다. 테러가 발생하는 지역은 카이로에서 먼 시나이반도나 리비아와의 국경지대이고 카이로는 안전하다고 하는데 구글 검색을 해보니 각국 정부의 이집트 여행을 주의하라는 경고문을 자주 볼 수 있었다. 관광객이 별로 없으니 대부분의 패키지 투어는 중단되었다. 이렇게 관광객의 숫자가 줄어드니 항공료와 호텔 숙박비가 상당히 저렴하다는 이점도 있다. 고민 끝에 카이로에서 한 4~5일 동안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여 비겁하게 지내보기로 하고 아테네에서 카이로 행 비행기에 올랐다.
구글에서 카이로 여행을 검색해 보면 추근대는 잡상인, 택시기사의 바가지 요금, 사이비 투어가이드의 사기극에 피해를 보고 여행을 망쳤다는 경험담을 많이 볼 수 있다. 그래서 사전에 이것 저것 미리 알아보고 예약을 해두는 것이 중요하다. 공항에서 호텔까지 오는 교통편부터 믿을만한 여행사이트에서 예약하는 것이 가격도 저렴하고 안전하다. 공항에서 시내로 오는 길은 그야말로 혼돈 그 자체였다. 특이한 것은 길가에 짓다가 방치한 아파트, 대형빌딩이 많다는 것. 사기꾼, 정상배들이 정부 예산이나 선량한 시민들의 돈을 떼어먹기 위해서 이런 건설프로젝트를 시행하다 잘못된 것이겠지. 길가의 시민들의 표정은 모두가 기대했던 '아랍의 봄'이 민주주의로 연결되지 않고 다시 군부가 집권한 허탈한 상황을 반영하듯 피곤하고 짜증스럽다.
도착한 호텔은 아주 세련되고 호화스럽다. 이 건물은 19세기 중반 스에즈 운하의 개통식에 참석한 프랑스 나폴레옹 3세의 부인을 위해서 건설된 궁이였다고 한다. 그런데 나폴레옹 3세는 그 다음 해에 프러시아와의 전쟁에서 패배하고 실각했으니 이게 아마도 그 왕비의 마지막 공식 해외여행이였겠지. 호텔은 높은 담장과 삼험한 경계로 웬만한 테러에는 끄떡없을 것 같고 호텔에는 관광객들이 다른 유명한 관광지의 호텔처럼 많아보이지는 않고 약간 느끼하게 생긴 현지 부자(?)들과 그 가족들로 붐빈다.
우리는 하루는 가이드를 고용하여 기자의 피라밋과 카이로 주변의 고대 이집트 유적을 보고, 카이로 시내는 우리가 알아서 다니기로 했다. 카이로 시내는 나일강 주변의 카이로 박물관과 '아랍의 봄' 당시 시민항쟁의 중심지였던 타흐리르 광장 지역, 구시가지의 아랍 최대의 시장이 있는 칸 엘칼릴리 지역(Khan el-Khalili), 그리고 중세 십자군 전쟁의 영웅 살라딘이 세웠다는 시타델(Citadel) 지역으로 나누어서 구경하면 된다.
우선 첫날은 호텔 부근의 카이로 박물관을 보기로 했다. 재미있는 것은 호텔 앞에 택시들이 죽 늘어서 있는데 호텔 바로 앞에서 타면 보통 요금의 세배를 받는다고 한다. 관광객 요금이라는 것, 박물관도 현지인과 외국인의 입장료가 매우 다르다. 빤히 알면서도 비싼 요금을 낼 수는 없는지라 호텔에서 한 2 ~ 300m 떨어진 곳에서 택시를 잡고 의기양양하게 목적지에 도착하고 미터요금을 지불했는데 앗! 이 친구 잔돈이 없단다! 어쩔 수 없이 꽤 많은 거스름 돈을 포기할 수 밖에는 없었다. 그래서 그 다음 날은 잔돈을 준비하고 대비를 했는데 이번에는 뻔히 보이는 목적지를 두고 빙빙 돌면서 바가지를 씌우는 것이 아닌가? 요금을 내면서 그러면 안된다고 한마디 쏘아붙였더니 "이 친구 당연한 것 가지고 화를 내네" 하는 표정으로 나를 빤히 쳐다본다.
박물관을 나서서 그래도 '아랍의 봄'의 중심지였던 타흐리르 광장은 한번 걸어봐야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길을 나섰는데 동양사람은 우리 밖에 없는 것 같다. 그 흔한 중국 관광객도 여기서는 찾아 볼 수 없다. 조금 걸어가니 여기 저기서 '어디서 왔느냐?, '카이로에는 사기꾼이 많으니 조심해야한다', '좋은 골동품이 있는데 사지 않겠느냐?" 등등 말을 거는 사람이 많아서 불안해진 아내의 재촉으로 결국은 택시를 타고 호텔로 돌아온다. 호텔은 바깥 세상의 빈곤과 혼돈과는 아무 관계없는 별천지, 잘 차려입은 이집트의 부유한 선남선녀들로 가득하다.
그래도 며칠 있으면서 추근대는 잡상인을 따돌리는 기술도 익히고, 택시 바가지 요금도 숙명으로 받아들이니 조금씩 도시의 매력을 느끼기 시작한다. 구경을 하며 거리에서 만난 사람들 대부분은 친절하고 성실하게 하루 하루를 최선을 다해서 살아가는 서민들, 이들이 그토록 갈구하는 진정한 카이로의 봄이 빨리 와야 할텐데.....
카이로에 가면 꼭 가봐야하는 국립박물관
국립박물관 입구의 아멘호텝 3세의 거대 좌상. 이 사람이 그유명한 투탕카문의 조부라고 한다.
구 시가지의 시타델(Citadel). 이 지역은 원래 12세기 아랍의 영웅 살라딘이 구축한 요새. 19세기 이집트의 실질적인 지배자인 무하마드 알리가 증축하여 지금은 카이로의 가장 대표적인 관광지로 자리 잡았다. 가운데 건물은 무하마드 알리 모스크.
무하마드 알리 모스크 내부. 이 모스크는 내부 장식이 화려한 것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무하마드 알리 모스크의 중정의 분수와 시계탑. 이 시계탑은 프랑스에서 제작한 것으로 파리 콩코드광장에 서있는 그 유명한 오벨리스크와 교환한 것이라고 한다. 나는 수십년 동안 콩코드 광장의 오벨리스크는 나폴레옹이 이집트 원정 시에 약탈해온 것으로 알고 있었다. 크 ~~
시타델의 성채. 지금은 군사박물관으로 사용된다고 하는데 이미 더위에 지쳐서 생략
모스크에서 만난 아주 밝고 명랑한 카이로의 소녀들
시타델에서 내려다 본 알 아자르 모스크
이집트인의 약 10%가 기독교 신자이고 대부분이 고대 기독교인 코프트교를 신봉하고 있다. Hanging Church는 3세기에 건설된 규모는 그다지 크지 않지만 아주 우아한 교회
Hanging Church 내부. 덥기도 하고 다리도 아파 한참을 쉬어가다
카이로 바자르인 칸 엘 칼릴리(Khan el-Kalili)의 한 골목. 이곳은 관광객 전용 카페인듯.
시장의 내부. 하나 건져보려고 했는데 이곳의 기념품은 대부분 중국제라는 이야기를 듣고 발길을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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