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10. 18. 14:09ㆍ여행
뉴욕에서부터 여정을 잡으니 페루의 리마에서 칠레 산티아고로 가는 항공편은 야간 편밖에는 예약이 되지 않는다. 그 구간만 낮에 출발하는 것으로 예약을 시도하니 항공료가 대폭 올라가서 어떻게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가족들의 같은 구간을 비행하는데 배 이상 돈을 쓸 필요가 있겠느냐는 논리적인 충고로 야간편으로 결정했다. 산티아고 도착 시간은 새벽 3:30. 호텔에는 일찍 체크인 하겠다고 미리 연락을 해두었는데 이것도 방이 없으면 어쩔 수 없는 것. 어떤 호텔은 이렇게 새벽에 체크인하면 정상요금의 50%를 더받기도 한다. 오래된 멤버십을 가지고 있으니 좀 봐주지 않을까? 그나저나 방이 없으면 큰일인데......
이렇게 새벽에 도착할 때는 꼭 시내로 가는 차편을 예약해야한다. 요즘은 우버의 등장으로 공항으로 오가는 교통편의 선택의 폭이 넓어지고 가격도 많이 내려간 상태. 공항에 도착하니 내 이름 팻말을 든 기사가 대기하고 있다. 호텔에 도착하니 방은 있는듯. 야간 매니저가 나와서 이런 경우 방을 하나만 내주지만 오래된 고객이니 방 두개를 모두 사용하게 해주겠단다. 그런데 공식적으로 우리의 체류는 오후부터 시작되니 호텔에서 아침식사를 할 경우에는 밥값을 내야한단다. 물론이지! 이렇게 재워주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인데 어떻게 밥까지 공짜를 바라겠는가?
산티아고는 16세기 초 페루를 정복한 프란시스코 피사로의 부하인 페드로 데 발디비아(Pedro de Valdivia)에 의해서 세워졌다. 이곳은 스페인 식민지의 최변방으로 주변의 인디언들을 정복하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렸고, 또 이따금 반복되는 지진으로 도시가 여러번 파괴되었지만 19세기 초 스페인에서 칠레가 독립한 후 수도로서 꾸준한 발전을 한다. 칠레는 남미에서는 가장 부유하고 정치적으로도 안정되어 있는 나라. 1970년대 초 군부 쿠데타로 집권한 아우구스토 피노체트가 물러간 후 평화적인 정권교체가 지속되어 이제는 민주주의가 정착된 나라이다.
페루에서 이미 녹초가 된 우리 가족은 칠레에서는 무리하지 않기로 약속한다. 그래서 관광목표를 낮게 잡고 이동도 가급적이면 택시를 이용하기로 했는데 산티아고 택시를 이용해보니 가격도 저렴하고 기사들도 친절하다. 오전을 자는둥 마는둥 보낸 우리 가족은 일단 시내로 가보기로 한다. 여기도 시내 중심가는 플라자 데 아르마스(Plaza de Armas) - 병기고 광장이라는 뜻으로 식민시대에 시내에 주둔했던 군대의 병영에서 유래한다. 그런데 시내로 가던 택시 안에서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던 딸이 부근에 유명한 스테이크 집이 있다고 한다. 맞아 ! 칠레에서는 스테이크와 와인을 꼭 먹어야지 !
급히 방향을 돌려서 OX라는 식당으로 갔는데 식당의 외양은 상당히 고급스럽다. 관광객 복장의 우리들은 살짝 기가 죽을 수 밖에 없었는데 아주 친절하게 맞아준다. 가격은 우리나라 유명한 스테이크 집의 약 1/3 정도, 와인도 마찬가지.... 이렇게 가격의 부담을 느끼지 않으니 더 맛이 있는 것 같다. 와인을 몇 잔 마시고 간이 부은 우리 가족은 평소에는 체중관리때문에 먹지 않던 디저트까지 먹기로했는데, 앗! 메뉴을 보니 내가 포르투갈 시절에 즐겨먹던 플란(Glazed Flan) 있지 않은가? 호기롭게 주문하고 와인 한잔을 더 마시며 기다린 디저트의 외양은 포르투갈에서 먹던 그대로인데 그 양이 엄청나다. 옛날 학창시절의 도시락만한 사이즈. 이왕 이렇게 된 것, 커피와 브랜디로 마무리하니 배는 엄청 불렀지만 이렇게 맛있게 먹은 기억은 오래 오래 남을 것 같다.
시내는 리마보다는 상당히 정돈된 모습. 시내에는 식민시대의 건물, 미술관, 거리 예술가, 지나가는 사람들 등등 시간에 여유가 있어야 볼 수 있는 재미있는 광경들이 많다. 특히 인상에 남는 것은 넓직한 도로와 도로 가운데 자주 볼 수 있는 녹지대. 이 사람들 정말 땅을 여유있게 쓴다. 좁은 곳에서 서로 부대끼며 살아온 우리 입장에서는 정말 부럽다. 원래 이번 여행을 계획할 때 페루에서 브라질로 갈까 하다가, 칠레로 왔는데 페루에서 느꼈던 정복, 착취, 사회적부조리같은 정신적인 부담감을 여기서 어느 정도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언제나 강약의 조화가 있어야 하는 법....
산티아고는 시내 어느 곳에서도 안데스 산맥의 눈덥힌 준봉들을 볼 수 있다. 높은 산맥이 가로 막고 있어서 공기 순환이 잘되지 않아 남미에서는 제일 공해가 심한 도시라고 하는데 서울에 비하면 그래도 좋은 편이라는 느낌이 든다. 산티아고에서 가까운 곳에는 빙하를 볼 수 있는 계곡이 있고 주변에 와이너리도 많아서 당일 코스 패키지 투어도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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