넛지의 힘

우리나라 의료보험공단에 해당하는 영국의 NHS(국민의료서비스)는 산하의료기관에서 환자들이 예약시간을 지키지 않아서 발생하는 비용을 줄이기 위한 연구를 실시하였다.  통계에 의하면 환자들이 약속시간에 내원하지 않는 경우가 1년에 16백만 건에 달하여 이로 인해서 전국 의료기관에서 낭비되는 비용은 약 7억 파운드(약 1조 2천억원)에 달한다고 한다.

NHS는 영국 중부의 베드포드셔(Bedfordshire)의 2개의 병원을 대상으로 조사를 한 결과 매년 12만건의 예약 중에서 약 4000 건의 예약이 예고없이 지켜지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NHS의 연구팀은 그 병원들에게 환자들과 전화로 진찰을 예약할 때 환자들로 하여금 약속 일자와 시간을 되풀이해서 말하게 하고 그 영향을 조사하였다. 그 결과 그 전달보다 예약 미준수율이 3.5% 하락하였다.  그다음 병원에 내원한 환자들이 다음 예약을 할 때 예약시기를 확정하고 예약기록부에 환자들로 하여금 예약 일시를 직접 기록하도록 하였는데, 그 결과 예약 미준수울이 18% 하락하였다.

그 다음 NHS 팀은 병원들의 홍보방식을 개선하기로 하였다. 예약 미준수에 골머리를 앓고 있던 병원들은 병원 게시판에 매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가를 내원환자들에게 주지시켜서 예약 준수율을 높이려는 노력을 하였지만 큰 효과는 없었고, 이번에는 방법을 바꾸어 매월 예약 준수율을 정리하여 게시하기 시작하였다.  위의 새로운 예약 방식과 새로운 홍보 방식을 적용한 결과 예약 미준수율은 놀랍게도 31%가 하락하였다. 

이 시험은 이렇게 간단한 너지(Nudge,  팔꿈치로 쿡 찌른다는 뜻; 자발적으로 타인의 선택을 유도하는 부드러운 방법)로 고질적인 어려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좋은 예이다.  약속 시간을 본인 입으로 직접 말하게 하거나 직접 기록하게 하는 것은 당사자의 주도성을 높일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한편 직접 말하거나, 기록을 하는 행동을 통한 직접적인 노력의 투자는 당사자들로 하여금 행동의 일관성을 갖게 만들어 준다. 

여기서 큰 노력과 투자가 없이 실시된 홍보방식의 변화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부정적인 것과 그에 따른 피해, 처벌을 강조하여 관계자들의 주의를 환기시키는 것과 긍정적인 면을 강조하여 관련자들에게 약속을 지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는 사회적 증거을 제시하여 행동의 개선을 꾀하는 것, 둘 중에 어느 것이 맞고 어느 것이 틀리다고 단언할 수는 없을텐데 아무래도 긍정적인 면을 강조하여 행동을 개선할 수 있다면 관련자들의 자발성을 유도하여 개선된 행동이므로 오래 지속될 것이다.

미국의 어떤 회사의 회계 담당자의 업무는 전 직원의 출장경비을 매월 정산하는 것이었다.  출장 경비를 정산하기 위해서는 소정의 경비사용내역서를 매월 말 담당자에게 제출해야 하는데 일부 직원들이 이 서류 제출을 제때  하지 않아서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매월 말 스트레스를 받던 그녀는 약속을 지키지 않는 직원들에게 항의도 하고, 전 직원들에게 메일을 보내서 협조를 요청하였으나 좀처럼 상황은 개선되지 않았다. 

기존의 방법으로는 상황을 개선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그녀는 마음을 차분히 가라 앉히고 전반적인 상황을 다시 한번 검토하였다.  그 결과 매월 약 5%의 직원들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하고 매월 말 제때에 경비사용내역서를 제출한 직원의 수를 통계로 전직원에게 공유하기 시작하였다.  그녀가 이 자료를 공유하자 그 다음 달부터 기일을 지키지 않는 직원의 수가 대폭 감소하였고 몇 달 후에는 전 직원이 제때에 서류를 제출하게 되었다.

이 연구는 영국과 미국에서 행해진 것이라 한국에서는 얼마나 현실성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만약 주변 사람들의 협조를 받지 못하여 오랜 기간 고생하고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면 상황을 객관적으로 검토하고 한번 쯤은 시도해도 좋은 방법 같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