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하는 자아, 경험하는 자아

2013. 12. 13. 08:45리더십

요즘은 대장내시경은 거의 100% 수면하에서 진행되기 때문에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실감하고 계신 분은 많지 않을 것 같다.  필자는 오래 전에 S상결장(직장) 내시경 시술을 받아 본 적이 있었다.  직장이라면 그렇게 긴 장기가 아니므로 간단하게 끝날 것이라고 생각하고 수면과 일반 중에서 일반 시술을 택했는데, 글쎄 시술한 시간은 한 5분?  하지만 그 불편함, 수치심, 고통은 거짓말 좀 보태서 군대시절 3년간 고생을 다 합한 것 보다 크다고 할까?  

 

하여간 그 다음부터는 내시경은 위건, 대장이건 무조건 수면내시경을 선택해오다, 요즘은 장비가 좋아져서 내시경이 덜 고통스러워졌다는 말을 듣고 몇 년 전부터 위내시경은 비수면하에서 받고 있는데 약간 고통스럽기는 하지만 견딜만하고, 화면으로 나의 위속을 볼 수 있다는 장점도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직장이나 대장내시경을 과거의 끔찍했던 경험이 생각이 나서 전혀 엄두가 나지 않는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이스라엘의 심리학자 다니엘 캐너만(Daniel Kahneman)과 그의 동료들은 90년대 대장내시경 시술환자들을 대상으로 재미있는 연구를 했다.  당시 대장내시경은 지금보다 장비가 열악하여 끔찍하게 고통스러웠다고 하는데 연구자들은 고통을 경험하는 것과 경험한 고통을 기억하는 것이 어떤 식으로 사람의 판단에 영향을 주는가를 규명하려는 시도를 했다.

 

그들은 환자를 A그룹과 B그룹으로 나누고 환자들에게 시술시 매 1분마다 고통의 수준은 1 ~ 10으로 평가해서 말해달라고 요청했다(정말 짜증스러웠을 것 같다).  A그룹의 경우 고통이 최고도에 달했을 때 내시경 시술을 끝냈고, B그룹은 내시경 시술시간은 조금 더 길었지만 고통의 강도를 서서히 줄이면서 내시경 시술을 마쳤다.

 

A그룹과 B그룹 중 어느 그룹이 더 고통을 더 받았겠는가?  물론 전체적인 고통의 양은 B그룹이 더 많았겠지만 과연 환자들은 그렇게 느낄까?  캐너만은 사람의 의식에는 '경험하는 자아(Experiencing Self)'와 '기억하는 자아(Remembering Self)'가 있으며 많은 경우 기억하는 자아가 사람의 인식과 행동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연구자들은 시술을 마친 환자들과 인터뷰를 해서 그들이 느끼는 고통의 수준을 조사했는데 그 결과 고통의 총량이 훨씬 더 높은 B그룹의 환자들이 대장내시경에 대한 공포심이 훨씬 낮았다고 한다.  환자들의 의식에는 고통의 경험 그 자체보다는 고통의 기억이 더 깊게 각인된다는 것, 그리고 고통의 기억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것은 옆 그래프의 고통의 Peak 값들의 평균과 시술을 마칠 때의 고통의 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또한 내시경 시술에서 시술시간은 환자들의 기억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것도 발견하였다.  2000년대 초반에 발표된 이 연구는 고통을 수반한 의료행위의 개선에 상당한 기여를 했다고 한다.

 

심리학 책을 읽다보면 이따금 아! 어떻게 이런 기발한 연구를 할 생각을 했을까 하고 감탄할 때가 많다.  이 연구도 정말 재미있고 참신한데, 우리의 삶을 돌이켜 보면 너무나도 당연한 결과인 것 같다.  직장 생할을 하면서 어려운 과제로 뼈를 깍는 듯한 고통의 경험은 누구나 했을 것이다. 아무리 날밤을 새우고 노력해도 도저히 해결책은 보이지 않고, 주위의 비난과 동정어린 눈길은 나를 더 비참하게 만들고, '아, 이것 저것 다 때려치고 시골에 가서 농사나 지을까?' 하는 생각과 '내 한 몸 편하자고 회사를 그만두면 가족은 누가 먹여 살리나?' 등등의 과정을 거쳐서 결국은 해피엔딩의 결말과 함께 '직장생활은 이런 맛에 하는거야'...   이런 긍정적인 기억이 우리로 하여금 다음 도전을 하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그런데 부하와의 관계에도 시사하는 점이 큰 것 같다.  필자는 한때 프로세스가 정립되지 않아 사고가 자주 나는 부서를 맡은 적이 있었는데, 부하들과의 대화의 대부분은 어떻게 사고를 수습하는가 하는 짜증스러운 것.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려고 해도 비슷한 사고를 직원들이 번갈아 가면서 내면 머리에 피가 솟구치는 것은 어쩔수 없다.  그래서 부하에게 나만의 비밀로 간직하고 싶었던 유치하고 치졸한 내 참모습을 수없이 보여 주고, 나중에 화가 가라앉으면 '나는 왜 인간이 이정도 밖에 되지 않는가?' 하는 자괴심에 쌓일 때가 많았다.  

 

몇 달을 그런 식으로 살다 '이러다 위암에 걸려서 일찍 죽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와 자성의 마음이 생기고 조금 이성적으로 상황을 관리해야 하겠다는 마음이 생겼다. 그래서 우선 생각한 것이 사고에서 최소한 미래에 대한교훈에 대해서는 부하들과 한번 생각해 보고 대화를 끝내자는 것.  얼마 후 부하들과 부정적인 대화도 기분좋게(?), 희망적으로 끝내는 경우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글쎄, 나와의 대화 그 자체는 여전히 고통스러웠지만, 그 기억은 긍정적으로 변해서 그랬는가?  사고가 날 조짐이 보이면 미리 보고를 하거나, 사고가 나더라도 자신의 책임을 떳떳하게 인정하고 자발적으로 대책을 제안하는 직원들이 늘어나는 경험할 수 있었다 . 

 

직장 생활을 하면 사고는 일어날 수 밖에 없고, 직원들을 육성하려면 때로는 날카로움과 단호함도 필요한 것, 늘 한결같이 고매한 인격을 유지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나쁜 상황이더라도 부하들이 상사와의 대면이100%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인식을 갖게하는 것이 상사의 임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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