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의 기쁨과 슬픔 - The Pleasures and Sorrow of Works, Alain de Botton

2013. 11. 2. 18:44도서


나는 10여년 전에 포르투갈에서 자동차 부품의 공장장으로 일한 적이 있었다.  규모는 그리 크지 않지만 자동차 메어컨 가동의 핵심부품을 생산하는 공장으로 그 당시로는 최신식으로 지어졌고, 여러가지 흥미있는 공정이 많아서 손님이 꽤 많이 오곤했다.  이따금 이렇게 까다롭고 복잡한 공정을 거친 완제품 가격에 대해서 묻는 손님이 있곤 했는데, 당시 대표적인 제품의 가격을 이야기해 주면 손님들은 복잡한 공정에 비해 값이 너무 싸다고 안타까워하기도 하고, 스위치만 누르면 당연히 돌아가는 것으로 알았던 에어컨에 이런 부품이 필요하고, 간단해 보이는 부품 하나 하나에 이렇게 많은 사람의 노력이 들어 간다는데 놀라곤 했다.


영국의 작가, 혹은 철학자, 아니면 저널리스트? 인 알랭 드 보통은 이 책을 영국의 항구에 드나드는 컨테이너선과 화물선을 관찰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아마도 항구에서 거대한 컨테이너선을 보는 사람들은 저 배안에는 무슨 물건들이 있고, 그 물건들은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는 것일까 하는 의문과 함께 상상의 나래를 한두번은 펼쳐 보았을 것이다.  항구의 현실은 우리에게 이런 큰 그림을 제공하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마치 내가 운영하던 자동차 부품 공장과 같이 수많은 사람들이 각기 이런 큰 그림의 작은 부분을 담당하고 있고, 자신의 임무에 충실한 사람들은 아무도 이런 큰 그림에는 관심을 갖고 있지 않은 것 같이 보인다.


저자는 여기서 출발하여 일반 대중이 소비하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완성하기 위해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하는 수많은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일을 하고 있으며 그들이 일을 하면서 느끼는 기쁨과 슬픔은 어떤 것이 있는가에 대한 탐구를 시작한다. 그래서 그가 찾아간 곳은 운송회사, 비스킷 공장, 커리어 카운슬러, 남미의 불령 가이아나의 우주발사기지, 화가, 송전탑, 회계사, 벤처회사, 항공전시회 등.... 어떤 기준으로 이런 분야를 선정했는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이런 곳을 방문하면서 글을 쓰는 과정은 매우 재미있지 않았을까?


어떤 독자들은 이 책을 읽으면서 이런 우리와 관련이 없는 일이나 직업에 대해서 이렇게 시시콜콜 알아야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것 같은데, 이런 회의를 극복할 수 있다면 이 책은 매우 재미있는 책이다.  우선 이 책의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는 작가의 센스있는 유머, 자세하지만 그렇게 지루하지 않은 일에 대한 설명, 그리고 전혀 생각해 보지도 않고, 관심도 없었던 분야에 대해서 새로운 지식을 얻는 기쁨이 만만치 않다.  작가는 한 비스킷 공장을 방문하는데 여기서 비스킷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레시피가 아니고 심리학이라는 사실을 발견한다.  맛있는 비스킷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크기, 모양, 코팅, 이름, 폰트, 포장, 그리고 물론 마트의 어느 선반에 진열하는가가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하고 여기에 훨씬 더 많은 스토리가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그리고 누가 프랑스가 남미의 열대 우림 한가운데 인공위성 발사기지를 운영하고 있고 이곳에서 프랑스 문화의 절해고도를 발견할 수 있고, 세계 각국의 송전탑에는 여러가지 유형이 있고 나라마다 다른 표준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겠는가?  그리고 유럽에는 여러 다른 모양의 송전탑이 모양을 감상하는 매니아들이 동아리가 있다는 것도....  이 사람들이 경남 밀양에서 벌어지는 송전선 건설 반대 시위를 본다면 어떤 생각을 할까?


저자는 이책을 쓰기 위하여 세계 각국을 여행하게 된다.  일종의 비즈니스 출장인데 최소의 비용만을 생각한 배낭 여행도 아니고, 그렇다고 부자들의 최고급 여행도 아닌, 비용과 안락함 그리고 효용을 조화를 추구하는 그런 여행 과정 중에 접하게 되는 공항 시설, 호텔, 렌트카, 식당, 바.....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만나게 되는 비즈니스 출장자들과의 대화와 첫인상에서 갖는 느낌 등....  출장이 잦은 사람들에게는 많은 공감을  가지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