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드카와 레벨 3 듣기

2012. 7. 22. 15:34리더십

 

2005년인가 우리 회사는 러시아의 한 고객과 앞으로의 협력관계 대해서 협의하고 있었다.  그런데 서로 지향하고 있는 목표가 너무 달라서 협상에서 난항을 겪고 있었다.  우리 팀장이 수 차례 러시아 출장을 다녀왔으나 양측의 입장은 시종 평행선을 긋고, 도무지 진전을 볼 수 가 없었다. 회사 내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고객사도 노골적으로 우리의 소극적인 자세에 대한 불만을 표시하기 시작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니 나로서도 뭔가 지금과는 다른 행동을 할 수 밖에 없었고, 우선 내가 직접 가서 현지 상황을 좀 더 자세히 파악한 후 대안을 찾기로 하였다. 아니 전문가인 우리 팀장이 몇 번이나 갔어도 합의점을 찾지 못했는데 나라고 뾰족한 대책이 있겠는가?  나는 이곳이 나의 워털루가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고 러시아행 비행기에 올랐다.

 

모스크바에서 하루 자고 다음 날 다시 무시무시한 러시아 국내선 비행기를 타고 모스크바에서 1000km 남쪽의 사마라로 향했다.  이곳은 러시아의 디트로이트라고도 불리는 러시아 국내 자동차 산업의 중심지. 공항에서 내려 한 40분 차를 타고 목적지에 도착하니 엊그제 부모님 상을 당한 표정을 짓고 있는 10여명의 중년의 남자들이 나를 맞아 주었다.  나도 심각한 표정으로 악수를 교환하고 점심 때가 되었으므로 식당으로 향했다.  유일한 한국인인 나를 포함하여 약 15 ~ 6 명 정도가 자리를 잡고 내 맞은편의 호스트가 이것 저것 음식을 주문하고나니 정신이 번쩍 나도록 아름다운 러시아 웨이트리스가 보드카 병을 들고 와서 내 호스트 옆의 사내에게 보드카를 권한다.  그 남자가 거절하자 웨이트리스는 다음 남자에게 묻고, 다시 거절하고……  이런 과정을 몇 번 거쳐서 웨이트리스가 내 옆에 도착했을 때 호스트는 통역을 통해 러시아에서는 이따금 점심 때도 보드카를 마시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장내는 침묵과 함께 좌중의 수많은 시선은 나에게 집중되고 내 옆의 러시아 웨이트리스는 무엇인가 호소하는 듯한 눈으로 나를 바라 보고 있었다.  아! 지금 무엇인가 결정해야 하는 상황이구나, 러시아에서의 나의 첫 결정이 보드카를 마시느냐 마느냐인가?  나는 나도 모르게 "Da!" 라고 말했다. 그 순간 테이블의 모든 사람들 입가에는 안도의 미소가 살짝 지나가는 것 같았고, 내 다음 부터는 모든 사람이 일사천리로 한잔씩 따르고 식사를 시작하였다.

 

나는 와인은 즐겨 마시지만 보드카는 별로…….  특히 식사를 하면서 그 독한 보드카를 마신다는 것은 썩 내키는 일은 아니었지만 나도 모르게 이것이 그 때 모든 사람이 원하는 것이라고 느끼고 순간적인 결정을 한 것 같다.  그런데 러시아에서는 술을 마실 때 아주 자주 누군가가 일어나 건배 제의를 한다.  먼저 내 호스트가 일어나 내 건강과 한국과 러시아와의 교류 운운하는 건배사를 해서 한잔 마시고 2 ~ 3 분 후 가만히 눈치를 보니 내가 일어나 건배 제의를 해야 하는 분위기라 나도 한마디 하고 또 한잔 마시고…… 또 다른 사람이 일어나 건배 제의하고, 다시 내가 답하고……. 이런 식으로 우리는 두 시간이 넘도록 화기애애한 점심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이렇게 해서 나와 러시아와의 깊은 인연은 시작되었다.

 

1 ~ 2 년 후에 나는 코액티브코칭 과정에 참가하게 되었다.  다른 코칭 과정과 마찬가지로 코액티브 코칭에서도 듣기를 매우 중요시 한다. 듣기에는 레벨 1, 레벨 2, 레벨 3 듣기가 있는데 레벨 1 듣기는 자기 중심적인 입장에서 상대방의 말을 듣는 것, 예를 들어서 상대방이 지난 주 낚시터에 가서 월척의 대어를 낚은 이야기를 했다면 낚시라면 내가 30년 경력이 있는데 말이야….” 하고 상대방의 말을 끊고 자기 이야기를 한다던가, 말을 끊지는 않더라도 이 친구 이야기가 끝나면 내 무용담을 이야기 해 주어야지.”하고 상대방의 말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것이 레벨 1 듣기라고 할 수 있다레벨 2 듣기는 상대방에 몰입하여 이야기를 듣는 것, 우리가 아주 재미있는 개그를 들을 때처럼 자기의 주관을 배제하고 상대방이 하는 이야기에 몰입하는 것 이라고 할 수 있다.

 

레벨 3 듣기는 이것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상대방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는 하지만, 상대방의 표정과 자세, 주변의 상황, 소음, 움직임 같은 것도 느끼고, 상대방이 말 하지 않는 것도 함께 받아 들이는 것을 말한다. 우리가 대화를 할 때 우리의 언어로 의사를 전달하는 비율은 약 7% 정도이고, 35%가 목소리의 크기, 억양, 강약, 그리고 나머지가 표정이나 몸짓으로 전달 된다고 한다.  코액티브 코칭에서는 이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말 하는 사람의 주변의 상황이나 에너지,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말하는 사람과 주위 환경과의 에너지 교환으로도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고 하고 있다.  그리고 코치는 이런 레벨 3 듣기를 통하여 고객이 의식하지 못하는 느낌도 감지하고 그것을 끌어내 고객으로 하여금 인식하게 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렇게 배우고 나니 '아 그 때 러시아에서 내가 느낀 것이 레벨 3 듣기 였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실생활에서 우리는 레벨 3 듣기는 많이 경험 할 수 있다.  이미 파장이 된 회식 자리에서 아직도 자기 이야기만 주절대고 있는 상사 이야기를 듣는 동료들의 표정과 자세에서, 지루한 강의를 참고 있는 도중에서, 아버지의 훈계를 묵묵히 듣고 있는 사춘기 아들의 꼼지락 거리는 발가락 끝에서……  코치로 할 일은 이렇게 본인이 레벨 3 듣기를 통해서 무엇인가를 느꼈다면 주저하지 않고 그것을 말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고객이 어제 친구들과의 즐거웠던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표정이나 자세에서 무엇인가 불안한 에너지를 보내고 있다면 코치의 할 일 자기가 느낀 것을 고객에게 말하고 그것이 무엇인지를 탐구하는 것이다.

 

레벨 3 듣기는 어느 정도의 연습을 필요로 하는데 공항, 기차역, 스타벅스 커피점 등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 가서 그 장소가 주는 에너지가 무엇인지 이름을 짓는 것이다.  나는 코칭 시간 사이의 점심시간에 강남신세계 백화점의 푸드코트를 많이 이용하는데 나는 이곳을 ‘사바나의 연못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얼룩말, 뉴우, 영양 등 동물들이 신속하고 물을 마시고는 급히 떠나는 것같이 이곳의 사람들을 보면 모두 어딘가를 가려고 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역삼동의 한 스타벅스는 늑대 안식처이라는 이름을 지었는데, 이곳에서는 사냥을 마친 늑대들이 휴식을 취하여 털을 다듬기도 하고 보금자리를 만든다는 느낌을 준다.  이곳은 다른 스타벅스와는 달리 손님의 이동이 많지 않고 조용 조용히 이야기를 하거나 혼자서 노트북 작업을 하는 손님이 많은 것에서 나는 하루의 바쁜 일상에서 사람들이 잠시 멈추어 휴식을 취하거나 다음 활동을 준비하기 하면서 무엇인가 다듬고 정리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

 

내가 느낀 레벨 3가 틀리면 어떻게 하냐고요?  글쎄 다음에는 맞을 확율이 더 증가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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