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니스에서

2012. 7. 20. 18:39여행

 

27년 만에 다시 베니스를 찾았다. 그때는 약 한 시간 거리의,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의 배경으로 유명한 베로나에서 차로 베니스 입구까지 가서 선착장 부근의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수상버스를 타고 들어갔었다.  이번에는 헝가리의 부다페스트에서 차를 몰고 크로아티아의 자그레브(Zagreb)와 슬로베니아의 류블리아나(Ljubljana)를 거쳐 이태리 북부의 국경도시인 우디네에서 하루 자고 아침에 베니스로 가기로 하였다.

 

차를 몰고 베니스에 갈 때 가장 큰 문제는 주차이다. 27년 전에는 비교적 주차가 수월했는데 요즘은 엄청난 수의 관광객이 몰린다고 하니 기껏 갔는데 주차장이 만원이라고 하면 그 다음부터 는 부근 지리에 깜깜한 나는 엄청난 대가를 치르게 된다. 그래서 인터넷을 찾아보고 내린 결론이 베니스의 마르코 폴로 공항의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공항 옆의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들어가는 것, 주차요금도 하루 12유로 정도로 별로 비싸지 않다.

 

공항에 도착하여 약간의 시행착오 후에 배를 타고 베니스의 관문인 산 마르코 광장에 도착했다. 내 머리 속의 산 마르코 광장은 광장 안쪽의 성당과 첨탑, 그리고 옛날 베니스의 정부 청사 격인 두칼레 궁전의 화려하고 장엄한 모습과 광장의 비둘기 떼와 이를 쫓아다니며 즐거워하는 아이들, 광장 주위의 멋진 아케이드의 커피숍에서 우아하게 차려 입고 커피와 와인을 즐기는 선남선녀들…… 이렇게 로맨틱한 것이었는데 막상 산 마르코 광장에 도착하니 비둘기 떼는 간 곳이 없고 광장은 관광객으로 발 디딜 틈도 없는 것 아닌가? 옛날에도 베니스는 사람으로 붐비는 곳이기는 했는데 관광객의 대부분은 유럽이나 미국 사람들이고 이따금 일본 사람들이 단체로 몰려 다녔고, 한국 사람은 물론 어디 가나 달랑 우리 식구뿐이었는데 요즘은 도저히 어느 나라 말인지 짐작할 수 없는 언어로 떠드는 관광객들로 인산인해이다.  길거리에 다니는 관광버스들로, 혹은 사람들 외양으로 폴란드, 우크라이나, 리투아니아, 러시아 사람들일 것이라고 짐작을 한다.  그리고 물론 어디를 가나 가장 크게 들리는 언어는 중국어이지만…..

 

아내도 나와 같은 상상을 하고 왔는지 실망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이날도 기온은 섭씨 30도가 넘는 무더운 날씨로 아내와 나는 더위 속에서 무작정 헤매다 지치느니 일단 괜찮은 식당에서 이른 점심을 먹으며 오늘 계획을 세우기로 하였다. 베니스는 이태리 북부에서는 볼로냐와 함께 음식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 곳이다.  지난 번에는 돌아가신 장인, 장모님을 모시고 왔었다. 베니스의 골목길을 배회하다가 한 식당 앞에서 먹음직스러운 바다가재를 보고 망설이고 있는데 꼭 말론 브란도 같이 생긴 웨이터가 나와서 감언이설로 꼬신다.  메뉴를 보니 값도 글쎄 내가 생각하고 있던 것의 반도 안 하는 것 아닌가? 그래서 큼지막하고 멋있게 생긴 놈 두 마리를 잡아서 백포도주와 함께 27년이 지난 지금도 잊지 못할 식사를 했는데 나중에 계산서를 보니 메뉴의 가격 보다 한 3배 정도 나온 것이 아닌가? 장인 장모 앞이니 당황한 기색을 할 수는 없고 곁눈으로 메뉴를 자세히 보니 표시된 가격은 100g당 가격……. 사태를 파악하고 군소리 없이 계산을 하고 나왔는데 워낙 맛있게 먹어서 바가지를 크게 썼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아내와 이런 옛날 이야기를 하면서 골목길에서 적당한 식당을 물색 중인데 좀 괜찮게 보이는 곳은 관광객으로 인산인해……. 잘못하다가는 베니스까지 와서 맥도널드 신세를 질 판이다.  일단 그 중에 좀 깨끗해 보이는 집으로 들어가서 간신히 귀퉁이에 자리를 잡았는데 식당 안은 러시아어 같은 슬라브계 언어로 떠드는 소리로 정신이 하나도 없다.  잠시 후 웨이터가 와서 주문을 받는데 이것 저것 물어 보면서 추억에 남을 식사를 주문할 분위는 영 아니다. 어쩔수 없이 메뉴에 나와있는 관광객용 세트메뉴을 택할 수 밖에 없었는데, 나는 부르스케타(Bruschetta – 이태리식 바게트빵을 살짝 구어 그 위에 바질로 양념한 굵게 다진 토마토 조각을 올린 것)와 오징어 튀김, 아내는 홍합과 파스타를 시키고 우리 베니스에 괜히 온 것 아닌가?’ 하는 후회를 하고 있는데 다행히 음식 맛은 생각한 것 훨씬 좋았다. 이 집 음식을 맛보니 내가 만드는 이태리 요리 보다는 훨씬 양념을 적게 넣고 재료의 맛은 충분히 살리는 실력 있는 집 같은데 밀려드는 동구와 중국의 관광객을 상대하면서 어쩔수 없이 관광객이 좋아하는 메뉴를 따라가며 이태리 식당으로서의 자부심을 조금씩 잃어가고 있는, 오늘 날 이태리 전체의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 주고 있는 것 같아서 아쉽다.

 

식사를 마치고 다시 산 마르코 광장을 나와서 광장 주위에서 사진 몇 장 찍었다. 아내와는 차라리 이렇게 옛날 분위기를 찾을 수 없는 곳에 있느니 오늘 밤부터 한 일주일 정도 머물 볼로냐로 미리 가서 오늘은 쉬는 것이 어떻겠는가 하는 이야기를 했는데, 일단 베니스에 왔으니 간단한 기념품을 사고 곤돌라를 타보기로 한다.  곤돌라는 지난 번 왔을 때 장인 장모께서 비싸다고 타자 말자고 하기도 하고, 돌을 갓 지난 딸도 있어서 타지 못했는데 이번에는 단둘이니 그냥 갈 수는 없는 노릇…. 한 시간 정도 베니스 골목길을 거릴다 곤돌라 타는 곳으로 갔는데 두 사람이 한 30분 정도 타는 가격이 무려 80유로!  입이 딱 벌어지는 가격이지만 산 마르코 성당이니 두칼레 궁전내부는 생략하기로 했으니 그곳의 입장료 가격이라고 생각하고 배에 올랐다.

 

나를 태운 곤롤리에는 한 40세 정도의 과묵한 친구……. 곤돌리에라면 좀 능글능글하고 농담도 잘하고, 이따금 노래도 한바탕 하는 그런 타입을 연상하는데 이 친구는 영 말이 없다.   유들유들하고 징글징글한 스페인, 포르투갈, 이태리 등 남유럽 남자들을 좋아하는 아내도 적지 않게 실망한 눈지……. 그래도 내가 탄 곤돌라는 좁은 골목길에서 다른 곤돌라와 부딪치지 않고 요리 조리 잘 다닌다.  다른 곤돌라를 보니 태반이 중국인 단체 관광객들, 식당에서 그렇게 시끄럽게 떠들던 동구의 관광객들은 이곳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다.  골목길을 지나다 보니 운하 옆의 건물 대부분 1층은 비어 있는 것 같았다.  얼마 전에 뉴스를 보니 아드리아 해의 바닷물은 매년 조금 씩 상승하는데 베니스의 지반은 낮아져서 조금씩 가라 안고 있고 이태리 정부에서 여러 대책을 강구 중이라고 한다.  그런데 재정이 고갈된 이태리에서 엄청나게 돈이 많이 들 것 같은 바다 속 지반이 침하하는 방지하는 프로젝트을 어떻게 수행할 수 있을까?

 

곤돌라 관광을 마치고 녹초가 된 몸을 페리에 싣고 육지로 향한다. 글쎄, 실망스럽다? 다시 오지 말고 옛날의 아름다운 추억을 그냥 간직하고 있을 것을 그랬나? 하는 생각도 들고, 이번의 경험도 몇 년이 지나면 흥미있는 추억으로 변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조금 인기 있는 곳은 중국과 동구의 관광객으로 넘쳐나는 것은 우리같은 사람들에게는 정말 큰 문제이다. 그렇다고 관광 다니지 말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며칠 후에 우리의 또 하나의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는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로 갈 예정인데 그곳을 또 얼마나 변해 있을까, 우리는 얼마나 실망을 할 것인가를 생각하여 오늘 목적지인 볼로냐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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