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스코 - Cusco, Peru

2016. 7. 10. 21:52여행

1532년 스페인의 프란시스코 피사로는 182명의 병사를 거느리고 잉카의 왕인 아타후알파와의 협상을 위해서 페루 북부의 온천지대인 카하마르카로 향하고 있었다. 왕위계승에 관한 분쟁으로 동생과의 내전에서 막 승리한 아타후알파는 수도인 쿠스코를 떠나서 5천명의 병사들의 거느리고 카하마르카에서 휴양 중이었다.  왕과의 첫 회담 때 군사를 매복한 피사로는 왕을 납치하는데 성공하고 피비린내 나는 전투 끝에 왕의 호위병들을 물리친다. 


피사로가 원하는 황금만 주면 곧 풀려나올 것이라고 오판한 아타후알파는 납치 후 약 1년 동안 피사로의 꼭두각시 노릇을 하다가 처형당하고 그 사이에 병력을 보충하고 아타후알파의 반대 세력을 규합한 피사로는 잉카제국의 수도인 쿠스코를 손쉽게 정복하고 자신에게 협조하였던 잉카의 왕족을 차례로 제거하였다. 그렇게해서 5만명의 군대를 보유하고 있었던 잉카제국은 채 500명이 넘지 않았던 스페인 원정군에 의해서 멸망하고만다.  쿠스코에 도착한 피사로는 잉카문명의 웅장하고 아름다운 건축물에 깊은 인상을 받아서 스페인 국왕에게 쿠스코는 스페인의 어느 도시못지 않게 아름답다고 보고했다고도 한다.


하지만 쿠스코는 고도가 높고 항구에서 멀다는 지리적인 불리함으로 리마에게 스페인 식민지의 수도의 자리는 양보할 수 밖에 없었다. 그후 안데스 산맥 지역의 기독교 포교와 식민통치의 거점 역할을 허면서 주변의 농업, 목축업, 광업 및 스페인과의 교역으로 지속적인 발전을 하였고 독립 후에도 페루 남서부 지역의 중심도시로 그 중요한 역할을 계속하고 있다. 쿠스코도 남미의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스페인계 백인이 상류계급을 형성하고 있고, 백인과 인디오의 혼혈인 메스티조가 주류를 이루는 리마와 달리 인디오 계 주민이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쿠스코는 해발 3,400m에 위치한 고산지대.  리마에서 올 때도 비행기가 안데스 산맥의 계곡 사이로 비행하는 아주 특이한 경험을 했는데 비행기에서 내리니 공기가 맑고 건조하다.  코스코에서는 조심하지 않으면 고산병에 걸리기 쉽다.  일단 고산병에 걸리면 치료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충분한 휴식과 고도가 낮은 지역으로 이동하는 것.  걱정이 많은 아내는 고산병에 걸려서 큰일 나는 것 아니냐?  여행을 포기해야 하는 것 아니냐 운운. 충분한 휴식을 하면서 여행을 할 것이며, 호텔의 객실에 산소를 추가로 공급하는 장치가 있어서 괜찮을 것이며, 고산병 약을 준비할 것이라고 안심을 시키고,  페루로 출발하기 전에 뉴욕에서 약국에 들러서 고산병 예방약을 사려고 했지만 의사의 처방이 필요하다나... 면밀하게 검토되지 않은 계획은 실패하기 마련, 결국 너무 무리하지 않도록 조심하는 수 밖에 없다.  


쿠스코는 스페인 식민시대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흥미있는 도시.  한편으로는 주변에 거주하는 원주민들이 자신이 경작한 농산물이나 수공업 제품을 파는 시장이 여러 곳에서 매우 활발하게 열린다. 시장의 원주민들은 우리가 사진에서 자주 보았던, 약간 슬픈 표정을 하고 중절모를 쓰고 케이프를 두른 아주머니들이 대부분인데, 보기보다는 상당히 장사 수완이 좋은 것 같고 말을 시키면 이야기도 잘하고 사진도 시원시원하게 잘찍어주는...  그야말로 아줌마들, 재미있다.  도시에 볼 것이 많고 시장에 아기자기한 토산품도 많아서 고산병 걱정을 하던 아내와 딸의 발걸음이 빨라지고 오히려 그들 뒤를 졸졸 따라다니던 내가 숨이 가빠지고 피곤해지는 것 같다.  그렇다고 가장의 체면이 있지 천천히 가자고 할 수도 없고.


쿠스코 시내에서 볼 수 있는 유적의 대부분은 스페인 침략 후 세워진 기독교 관련 유적이나 공공건물들, 그런데 이 건물들은 대부분 잉카 유적을 헐어버린 자리에 세워졌고 많은 건물들이 잉카시대 유적의 돌벽이나 기초를 그대로 이용한 것이 많았다. 현지에서 건축자재를 조달한다는 현실적인 이유 외에 잉카의 궁전이나 사원을 허물고 그 위헤 성당과 공공건물을 건설함으로 원주민들에게 기존 권위를 대체할 수 있는 경외의 대상을 제공, 또 스페인 체제의 우수성의 과시 같은 것을 노렸을 것이다.  우리도 일제시대 때 비슷한 경험이 있지...  원주민들의 고통과 좌절에 공감을 느낀다.



쿠스코에도 중심은 Plaza de Armas 이다.  성당, 박물관, 호텔, 식당, 시장들이 모여 있는 명실상부한 쿠스코의 심장이다.


플라자 데 아르마스의 다른 쪽



쿠스코의 뒷골목에서 만난 소녀.  정말 작고 애처로워서 우리 가족의 마음을 착잡하게 만들었던 소녀.


시내의 야경. 야간에는 젊은 배낭족들이 광장의 주도권을 잡는다


잉카제국의 왕궁와 신전이 있었던 삭사이와만(Sacsaywaman) 대부분 파괴되고 이렇게 기초만 남아있다.


삭사이와만(Sacsaywaman)에서 내려다 본 쿠스코 중심가


유명한 12면 바위 벽이 있는 골목.  잉카인들의 돌을 다루는 기술을 정말 대단해서 지금도 바위틈 사이에 면도칼도 들어가지 않는다고 한다.   원래는 잉카 신전이었는데 헐어버리고 이렇게 건물하부를 쿠스코 대주교의 관저의 기초로 사용하고 있다. 스페인인들의 잔인하고 무지막지한 압제에 분노를 느꼈던 곳.


문제의 쿠스코 대주교 관저의 정원.  괘씸하기는 하지만 그 우아함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태양신을 위한 제사가 열리곤 했다는 쿠리칸차를 허물고 세운 산토 도밍고 성당의 중정, 화단, 건물, 푸른 하늘의 절묘한 조화



쿠리칸차의 야외 신전 유적. 녹색 잔디,갈색의 건물, 푸른 하늘의 조화를 그리는 것은 나의 똑딱이 카메라로는 역부족.


잉카의 후예, 착잡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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