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7. 4. 18:10ㆍ여행
소설 백경의 저자 허만 멜빌은 페루를 세상에서 가장 이상하고 슬픈 도시라고 불렀다. 멜빌이 지진으로 파괴된 리마를 방문한 경험을 소설에서 소개한 것이라고 하는데, 굳이 멜빌의 표현을 빌리지 않아도 리마는 비극적인 도시이다.
16세기 초 잉카제국을 멸망시킨 프란시스코 피자로는 리마를 그의 근거지로 삼고 안데스 지역의 식민지를 운영했고 곧이어 스페인 정부는 리마에 남미의 모든 식민지를 총괄하는 총독부를 세우게 된다. 이후 1800년대 초에 독립을 하게될 때까지 리마는 스페인의 남미식민지에 대한 착취의 상징이 되었다. 또 리마는 남태평양에서 준동하는 해적들이 즐겨 공격하는 타겟이 되었고 수십년에 한번씩 찾아오는 대지진은 리마에 살고 있는 하층민 인디오에게 엄청한 피해를 안겨주곤 했다.
독립이 된 후에도 스페인 정부를 대신해 집권한 백인지주계급의 원주민에 대한 착취는 계속되었고 끊임없는 권력투쟁으로 안정을 찾지 못하다 설상가상으로 칠레와의 전쟁에서 패배하여 한동안 칠레군이 주둔해서 약탈을 일삼은 적도 있었다. 전쟁이 끝난 후 구아노, 구리 등 풍부한 천연자원이 개발되었지만 그것을 제대로 배분하는 경제시스템의 구축에 실패하고 군부독재에 이어 무능한 포퓰리스트들이 번갈아가며 집권하였다. 한동안 모택동 노선을 지지하는 'Shining Path'라는 게릴라 집단과의 수십년간의 내전에 시달리기도 하였다. 다행히 내전은 끝나고 알베르토 후지모리가 실각한 후 정치적인 안정을 찾은 페루는 최근에는 꾸준한 경제적인 성장을 하고 있다.
이렇게 쓰고나니 리마가 어려움을 많이 겪은 도시라고는 하지만 서울도 지난 500년 동안 그에 못지 않는 고난을겪지 않았는가? 하지만 서울은 아직 완전하지는 않지만 과거의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데 성공하였고 리마의 고난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내가 갔을 때는 수감중인 전 대통령 알베르토 후지모리의 딸이 출마한 대통령 선거의 결선 투표를 위한 선거운동이 한참이었는데, 글쎄 TV를 보아서는 시민들의 정치에 대한 관심은 그리 높지 않은 것 같았고 나중에 당선된 페드로 쿠친스키 대통령에 대한 기대도 그리 높지 않은 듯.
사람들이 리마를 찾는 이유는 대부분 페루의 다른 관광지를 찾기 위해서이다. 우선 마추피추와 쿠스코, 우유니 소금호수, 티티카카 호수, 그리고 공중에서만 식별할 수 있는 나스카의 거대 지상화, 북부의 아마존 강의 밀림지대, 아타카마 사막 등 페루에는 볼 것이 많다. 지도에서 보면 그리 크게 보이지 않지만 페루는 남한의 10배 정도 되는 넓은 나라이다. 우리는 욕심을 부리지 않고 리마에 이틀 정도 머무르면서 구경하고, 쿠스코로 이동해서 마추피추를 다녀오는 일주일 정도의 미니 여행을 했는데 시간에 여유가 있다면 좀더 긴 여행을 해도 상당히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리마는 과거 스페인제국의 남미 근거지였기 때문에 식민시대의 역사적인 유물과 유적지가 많다. 스페인 사람들은 식민지 도시를 건설할 때 주로 주둔군의 병영을 먼저 짓고 그 다음에 교회, 그리고 무역상, 일반 식민자들을 위한 상업거주지역을 건설하곤 했다. 그런 이유로 남미의 대도시의 시내 중심가는 요즘도 Plaza de Armas 라고 불리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말로 번역한다면 '병기고 광장' 정도 될 것이다. 리마도 예외는 아니어서 시내 관광은 Plaze de Armas의 리마 대성당, 대통령 궁, 산프란시스코 수도원을 시작으로하여 대부분 도보로 가능하다.
지진과 전쟁을 겪었다고는 하지만 리마는 식민시대의 유적이 큰 변화를 겪지 않고 보존된 도시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리마에 관한 뉴스는 썩 좋은 것이 없어서 후진적이고 치안이 불안하지 않을까 걱정을 했는데 거리의 모습은 차분하고 안정되어 있다. 그래도 밤에 혼자 잘 모르는 곳을 혼자 돌아다니는 것은 위험하겠지. 식민시대의 유적도 생각보다는 잘 관리되어 있고, 유적 부근에는 잡상인, 시내을 저렴한 가격으로 안내해주겠다는 사람, 노숙자들로 어수선하지만 구경하는데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다.
리마는 물가가 싸서 관광하기가 좋은 곳. 페루 근해에서 난류와 한류가 만나기 때문에 해산물이 풍부하다. 값싸고 맛있는 해산물 요리가 풍부하고 또 이웃 칠레의 값싸고 품질 좋은 와인으로 나처럼 먹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관광객들에게는 아주 좋은 곳이다. 사람들도 약간 슬픈 표정을 하고 있지만 말을 걸어보면 순박하고, 친절하고 때로는 유머러스하기도 하다. 일부 상인이나 택시 기사가 바가지를 씌우려고 하기는 하지면 우리 수준에서는 애교로 받아주어도 좋을듯. 시내의 택시에 미터기가 없어서 택시를 탈 때마다 일일히 가격을 흥정을 해야하는 불편함이 있기는 하지만 인터넷에서 미리 주요 구간의 요금을 통상요금을 알아 놓는다면 크게 바가지를 쓸 일은 없다.
플라자 데 아르마스의 리마 대성당. 이 안에 정복자 프란시스코 피자로의 무덤이 있다.
용기, 탐욕, 속임수로 잉카제국 정복한 그도 결국은 동료들의 손에 암살당하고만다.
플라자 데 아르마스에서 본 페루 대통령 궁.
우아한 건물이지만 그에 걸맞는 훌륭한 대통령은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산 프란시스코 수도원 정식 이름은 Convento y Catacumba de San Francisco. 그러니까 수도원과 지하예배당이
있는 곳. 원래 Catacumba는 로마시대 초기 기독교들이 박해를 피해서 로마 시내 지하에 굴을 파고 예배를 본 사실에 유래한다. 스페인은 기독교 국가니 박해를 받을 이유는 없었지만 상징적인 의미의 지하예배당이 있는 성당이 많다. 이곳의 지하 예배소는 묘지로 사용되어 엄청난 양의 유골이 안치되어 있다. 엄청난 양의 유골을 쌓아놓은 것을 안치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플라자 데 아르마스 부근의 한 박물관 내부. 우아한 중정이 인상적이다.
플라자 데 아르마스로 연결되는 보행자 지구. 부근에 저렴한 식당이 많다. 페루에서 가장 유명한 음식은 Ceviche로 싱싱한 생선 샐러드, 지방마다 식당마다 특색있는 맛으로 관광객을 유혹한다. 페루는 세계 최대어업국 중 하나로 부근 바다에서 갓 잡은 싱싱한 생선과 이웃 칠레의 와인을 매우 저렴한 가격으로 즐길 수 있다.
스페인 정복 전의 유물들. 단순하고 우아한 매력으로 우리가 가졌던 잉카 원주민에 대한 부정적 인식 - 야만적이고 성숙되지 않은 문화의 주인공 - 을 말끔히 불식시켜준다. 경제학자들에 의하면 남미에는 소나 말과 같은 대형가축이 없어서 농업생산성의 향상을 위한 농기구나 마차같은 운송장비를 발전시킬 수 없었고, 그것은 시장경제활동의 발전을 저해하여, 원주민들은 부의 축적과 과학의 발달을 이루지 못하고 결국은 유럽인에게 굴복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유럽인들이 도착한 후 겪게되는 중노동과 유럽인들이 퍼뜨린 전염병으로 인디오의 90%가 사망하였다고한다.
플라자 데 아르마스 부근 한 귀족의 저택의 도서
리마 대성당 지하의 유골. 사진의 유골은 전체의 극소수. 부근의 공동묘지를개발하면서 유골을 수습하거나 지하에서 대규모 묘지를 발견하여 그곳의 유골을 성당에 보관하는 경우가 많다. 유럽의 성당에서도 자주 볼 수 있는 광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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