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입: Flow - Mihaly Csikszentmihalyi

2013. 4. 6. 15:30도서


수십년 전 이야기 인데,  필자는 경기도 가평군의 현리라는 곳에서도 한참 들어간 산골의 한 포병부대에서 군대생활을 하고 있었다. 당시 군대에서 가장 환영 받는 인재는 낫질삽질새끼 꼬기나무하기 같은 일을 잘해서 부대의 살림에 직접적인 도움을 주거나글씨를 잘 써서 폭주하는 행정반의 각종 차트보고서 작성에 일손을 덜 수 있는 사람이었다.  불행히도 이런 재주가 없는 나는 신병시절을 고문관 노릇을 하면서 어렵게 보낼 수 밖에 없었다. 

 

그 중에도 가장 큰 문제는 완전군장 10km 구보인데, 내가 근무하던 부대는 별 일이 없는 한 매주 수요일 오후에 전 부대원이 무장을 하고 배낭을 맨 상태에서 10km 구보를 하는 행사가 있었다.  다른 작업이나 훈련은 서툴러서 때로는 고참들의 핀잔을 듣기는 하지만 다른 병사들과 같이 끝낼 수 있어서 별로 표가 나지 않았는데구보는 다른 사람들과 같은 속도를 내지 못하면 결국은 낙오를 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얼렁뚱당 넘어갈 수 없는 일.  그렇다고 일과가 끝나면 내무반에서 온갓 잡일과 심부름은 도맡아 해야 하는 내가 따로 달리기 연습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지금까지는 억지로 죽을힘을 다해서 뛰어 다행히 낙오는 면했는데 언제까지 견뎌낼 수 있을지 수요일 아침만 되면 정말 고민이 아닐 수가 없었다.

 

어느 수요일 오후, 그날도 부대를 나와 맑은 시내가 흐르는 계곡 길을 달리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과 보조를 같이하려고 무진 애를 쓰고 있었는데 자연스럽게 숨을 쉬면서 앞으로 가면 된다는 고참들이 말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고 장딴지와 허벅지는 점점 더 무거워지고가쁜 숨을 몰아 쉬느라 목안은 점점 더 타 들어 갔다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들이킨 공기가 기도를 지나서 천천히 허파까지 들어가서 돌아 나오는 듯한 느낌이 들었고,  다리가 무겁다는 느낌은 사라지고 길가에 늘어서 있는 곧은 잣나무의 향긋한 송진 냄새숲 속에서 들려오는 새소리가파른 계속을 타고 흐르는 시냇물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는 것 아닌가?  내 앞에 달리는 동료들의 땀에 젖은 군복에서 무럭 무럭 올라오는 김배낭에 달려있는 반합의 덜거덕 소리소총과 수통이 부딪치는 소리규칙적인 군화소리들이 음악처럼 들려오기 시작했고, 나는 무아지경에 빠졌다.  그리고 어떻게 뛴 줄도 모르는 사이에 벌써 부대에 도착했고., 그 이후에는 내가 부대를 대표하는 전문적인 달리기 선수는 되지 못했지만 수요일 오후의 구보에서 종종 이런 환희를 맛볼 수 있었고, 어느새 수요일이 기다려질 때도 있지 않은가!  거의 40년 가까이 흐른 요즘도, 이따금 러닝머신 위에서 달릴때 이런 기분을 맛 보곤 한다.

 

이후에도 회사에서 일에 몰두할 때등산할 때요리할 때가족에게 집중할 때 이런 무아의 지경을 느낄 때가 종종 있는데, 긍정 심리학의 대가인 미하이 칙센트미하이(Mihaly Csicksentmihalyi)는 이런 상태에 Flow 라는 이름을 붙였다.  Flow는 문자 그대로 물이 흐르듯이 아무 어려움이 없는 상태를 말하는데 저자는 이 책에서 Flow의 조건이 하는 일의 어려움과 자신의 능력이 조화를 이룬 상태라고 한다.  만약 과제가 너무 어려우면 좌절을 느껴서 포기할 것이고 과제가 너무 쉬우면 지루함을 느낄 것일텐데,  삶에서 진정한 기쁨을 느끼는 요소는 우리가 특별한 스킬이 필요한 행위를 수행하고그것에 몰두하여 의식과 행위가 일치했을 때즉 무의식적으로도 이상적인 동작과 행위를 수행할 수 있고그 결과에 대한 평가가 명확할 때라고 한다.  우리가 많은 시간을 TV앞에서 보내고 있지만 대부분 Flow를 느끼지 못하고 많은 사람들이 TV 앞에서 보낸 시간에 대해서 후회를 하는 이유는 그 목표와 행위 자체가 수동적이고 어떠한 스킬도 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무의미한 시간을 보내는 것도 적당한 선에서는 피로 회복에 유익하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많다)

 

저자는 ESM(Experience Sampling Method)라는 방법을 고안하여 사람들의 상황에 따른 심리 상태를 조사하는 당시로는 매우 획기적인 연구 결과를 내놓을 수 있었다.  ESM은 연구대상자들에게 호출기를 항시 지니게 하고 하루에 일정한 회수로 무작위의 간격으로 신호를 보내고 신호를 받은 대상자들은 그 당시에 하고 있던 일과 심리상태를 정해진 양식에 따라 기록하게 하는 방법이다.  지금은 심리학에서는 상당히 널리 쓰이는 방법인데, 광범위한 조사를 근거로 저자는 육체적정신적사회적인 Flow 란 무엇을 말하며,  과제 난이도와 목표 달성을 하면서 느끼는 Flow직장에서의 Flow 를 달성하기 위해서 필요한 조건에 대해서 자세한 설명을 하고 있다.   요약하자면 어떤 사람이 진정한 행복과 기쁨,  심지어는 성공을 누리기 위해서는 Flow의 상태에 종종 몰입해야 하며,  Flow는 자신의 능력을 약간 초과하는 의욕적인 목표를 추구하는 가운데 의식과 행위가 완전히 합치하여 도전적인 과제를 수행함에 있어서 물 흐르듯무의식적으로아무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다는 상태를 말한다.

 

저자는 결국은 의미있는 목표의 설정이 중요하다고 본다.   예를 들어 직장의 일에만 몰두하여 사회적 성공을 거두었지만 그 동안 가정에 등한하여 결국은 가족을 잃게 되거나,  Sex나 쾌락을 통한 Flow의 추구에서 볼 수 있듯이 인생의 본질적인 의미를 망각한 Flow은 해로울 수도 있다는 경고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