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미야지마

Algeruz 2013. 4. 15. 20:19

미야지마(宮島)는 일본의 3대 명승의 하나라고 하는데 한국에서 가보신 분은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고,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이라고 하는데, 글쎄 내가 보기에는 실제 경치는 명성에 비해서 조금 떨어진다고 조심스럽게 말하고 싶다. 

이 섬은 일본의 혼슈우(本洲)와 시코쿠(四國) 사이의 세토나이카이(瀬戸内海)에 위치하고 있고 2차대전 당시 원폭 투하지인 히로시마에서 교외선을 타고 한 30분 거리의 미야지마 구치에서 또 다시 한 10분 정도 페리를 타고 가는, 한국 사람이라면 경험있는 여행자가 아니면 그렇게 가기가 쉬운 곳은 아니다.


미야지마는 섬 자체보다는 이츠쿠시마(嚴島)신사로 더 유명하다.  

6세기 경에 창건된 이 신사보다 더 유명한 것은 도리라고 부르는 신사의 입구, 우리로 말하면 일주문 같은 것인데, 이 도리는 아래 사진에서 보듯이 바다 속에 세워져서 유명해 졌다.  

도리가 바다에 세워진 유래는 섬이 성스러운 곳으로 신사 참배를 원하는 속세의 민중은 섬을 더럽히면 안되며, 신사가 바로 바다 앞에 세워졌으므로 입구는 바다 속에 있을 수 밖에 없는 것.  논리는 어떻든 간에 도리는 바닷속에 세워졌고 그 덕에 후손들은 관광객들을 상대로 톡톡히 재미를 보고 있다.


섬 안의 신사와 절은 내가 보기에는 큰 특징이 없는, 다른 곳과 비슷한 모습이고, 신사 옆의 자그마한 마을에는 관광용품과 이 지역 특산물인 단풍잎 풍미의 우리나라로 치면 붕어빵인 만주를 파는 가게, 특산인 뱀장어 요리를 하는 식당이 몰려있는데, 이렇다할 특징이 없지만 인산인해, 다리가 아파서 커피 한잔 할 곳을 찾아 보았는데 이곳에는 아직 스타벅스 같은 곳은 없고 일본식 다방이 몇 집 있었다. 그곳에 들어가기도 그렇고 별다르게 할 것, 볼것이 없어서 이 지방 특산이라는 굴 튀김으로 점심 식사를 대충 하고 친구가 잡아준 호텔로 갔다.  

원래 내 친구는 미야지마의 료칸을 추천했는데 료칸에서 한번 자보고 싶기는 했지만 그 값이 매섭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지라 어정쩡하게 머뭇거리고 있는 동안 그 료칸이 에약이 꽉 차 버렸고, 그 보다 가격이 조금 저렴한 일본식 호텔로 잡은 것. 


호텔에 도착하니 약 100년전에 외국인 관광객을 유치할 목적으로 세웠다고 하는데 영어가 전혀 통하지 않는다. 

그동안 독학으로 배운 일본어를 톡톡 털어서 공동 목용탕 사용법, 유까타 입는 법, 이부자리 깔고 개는 법, 방에서의 저녁 식사 요령과 절차 등등 상당히 오랜 시간 세심한 교육을 받고 드디어 입실!  방문을 연 순간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티끝 하나 없이 깨끗하게 정리된 방, 바닥의 은은한 색의 다다미와 옅은 갈색의 벽과 기둥, 그리고 일본식 창호와 창밖에 보이는 소나무와 바다가 어우러져 나도 모르게 탄성이 나오면서 지난 며칠 간 교토와 오오사카에서의 번잡함이 눈 녹듯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방에 별다른 가구도 없고, 벽에 그림 한장 걸려 있지 않은데 참 특이하다.  

그런데 방안의 단순명료함과 창밖에 보이는 소나무들, 그리고 멀리 배경으로 보이는 바다의 풍경이 조화를 이루며 방안에는 아주 정갈하고 편안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이런 곳에 섯불리 가구나 장식품을 두면 웬지 분위기를 완전히 망칠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사람은 원래 빈손으로 온 존재, 아무것도 없는 것이 가장 마음을 편하게 하는 것. 서울의 집에 필요없고 쓰지 않는 물건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 이렇게 아무 것도 없는 곳에서 마음이 차분해지고 행복감을 느낀다.  

사람들이 비싼 돈을 주고 료칸에 묶는 것을 이해할 것 같다.  


1층의 대중탕에서 목욕을 하고 방에 돌아와 저녁 상을 받았는데, 최고급의 가이세키(懷石: 정통일본정식)까지는 안되더라도 정갈함과 장인 정신이 엿보인다.  

누군가 말했다. 한국음식은 무엇인가 계속 첨가하면서 맛을 내는 반면에 일식은 음식재료에서 필요 없는 맛을 제거하는 과정이라고.  음식은 특별한 재료를 쓰지 않고 단순, 평범하다고 할까, 하지만 이 섬과 방의 분위기와 딱 맞아 떨어지는 식사 같다.  아마도 어떤 음식의 장인이 방의 분위기와 창밖의 경치, 그리고 쉽게 구할 수 있는 토속의 재료로 궁합을 맞추기 위해서 엄청난 고민을 한 결과가 아닐까?  

반주로 한 사케와 맥주 덕분에 저녁 식사 후 해변가를 거닐려는 계획을 변경하고 바로 이부자리를 깔고 잠자리에 들다.  아침에 일어나니 아홉시간을 스트레이트로 수면.....  정말 신기한 일이다.  내 친구가 히로시마의 편안한 현대식 호텔을 두고 꼭 이 섬에서 자야 한다고 우겼던 것을 이제는 이해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