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볼로냐 (Bologna)

Algeruz 2013. 2. 10. 16:45

볼로냐(Bologna)는 로마, 베니스, 피렌체, 밀라노를 연결하는 이태리 중부의 교통의 요충지. 볼로냐는 유럽에서 가장 먼저 대학이 설립된 도시이다1088년에 설립된 볼로냐대학은 아직도 이태리에서 가장 존경 받는 대학중의 하나인데 단테, 페트라르카, 토마스 베켓, 네델란드의 철학자 에라스무스, 지동설을 주장한 코페르니쿠스 등이 졸업생이다. 이런 위대한 인물들을 선배로 가지고 있는 볼로냐 대학생들은 어떤 자부심을 가지고 있을까?

 

볼로냐는 뚱보의 도시로도 알려져 있는데, 그 이유는 이 지방의 음식이 맛이 있기 때문.   돼지 앞다리를 말린 이태리식 햄인 프로슈토, 살라미는 이 지방에서 유래한 음식이고, 무엇보다도 한국사람들도 한번쯤은 먹어 보았을 토마토 소트의 볼로냐식 스파게티도 물론 이 지방에서 유래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볼로냐를 이태리 음식문화의 중심지라고 생각하고 있고, 현지에서는 관광객을 대상으로 요리교습을 관광상품화 하여 팔고 있다이곳에서 와서 요리도 배우고 와인 한잔하면서 세계 각국에서 온 여행객과 교류해도 굉장히 재미 있을 것 같다.  


이 도시에 며칠 머물면서 볼로냐 음식을 맛볼 기회가 있었는데, 몇 대씩 대를 물려가며 영업을 하고 있는 전통적인 식당이 많은 것 같았고, 종업원들의 자부심이 대단한 것 같았다.  내가 맛본 볼로냐식 스파게티는 우리가 한국에서 먹는 것 보다는 양념을 작게 하고 재료의 맛을 살렸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이곳에 좀 더 머무르면서 자극성이 강한 음식에 길들여진 내 혀를 순화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시내의 주차 사정도 비교적 좋은 편, 시내 중앙에 재래식 시장이 있고, 그 부근에 지하 주차장이 있는데 시설도 엄청 낡았고, 조명도 신통치 않아서 서울의 시내 큰 건물의 주차장에 비하면 초라하기 짝이 없지만 그래도 감시카메라도 있고, 주차 요금도 별로 비싸지 않아서 마음이 편안하다.  차를 세우고 위층의 상가에서 에스프레소에 옛날 포르투갈에서 즐기던 엠파다 도 프랑고(만두 같이 닭고기 소를 넣은 패스트리)로 가벼운 아침을 하고 시내 관광에 나선다.

 

처음 볼로냐에 들어서게 되면 거의 모든 건물들이 븕은 색을 띄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중세 이태리의 대부분의 건물에 붉은 색 기와가 쓰이고 있기는 하지만 볼로냐 같이 이렇게 거의 모든 건물들의 지붕은 물론, 벽까지 붉은 색을 사용하는 것은 보기 힘든 것 같다.  

볼로냐는 중세건물이 가장 잘 보존된 도시인데, 19세기에 대대적인 도시계획을 단행해서 상당히 큰 변화가 있었다고는 하지만 도심은 중세의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다.  


이 도시의 중심은 피아짜 마지오레 광장, 이 광장에 들어서면 볼로냐의 상징인 넵튠 동상이 관광객을 반긴다.  이 동상은 1563년에 세워진 것이라고 하는데 작렬하는 태양 아래 오만한 자세로 서있는 바다의 신 넵튠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주변에는 르네상스 시대의 아케이드, 교회, 궁들이 눈을 즐겁게 한다.  우선 팔라죠 코무날레의 볼로냐 시립 미술관을 보기로 한다.  이탈리아에 오면 수 많은 르네상스 시대의 미술품에 압도를 당해서 우리나라에 오면 엄청 귀중할 그림도 여기서는 그저 그런 그림으로 밖에 느껴질 때가 많다.  

이 미술관은 규모가 크고 소장한 그림과 골동품이 상당히 많아서 눈을 즐겁게 하는데 옥의 티는 에어컨이 없어서 한 시간 정도 구경을 하고 나니 엄청 지친다는 것.  궁 뒷마당 그늘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다시 시내 구경에 나선다.

 

이 도시 건물의 특징 중의 하나는 곳곳에 서있는 탑이다(아래 사진 참조) 볼로냐 구도심을 거닐다 보면 곳곳에 서있는 탑들을 발견하게 된다이 탑들은 12 ~ 3세기경에 세워졌다고 하는데 원래 100개 정도 있었고, 지금은 약 20개 정도가 남아있다고 한다탑의 높이는 약 60m 정도, 중세 볼로냐 사람들이 왜 이렇게 많은 탑을 세웠는지에 대한 설명은 확실치 않은데, 독일의 신성로마제국 황제와 로마의 교황이 유럽 정치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대립하고 있었고, 수시로 독일군이 이태리를 침략하곤 했는데 로마로 향하는 길목에 있었던 볼로냐 귀족들이 방어를 위해서 건설한 것이라고 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당시 부자들이 자신의 부를 과시하기 위해서 높은 탑을 경쟁적으로 세웠다고 하기도 한다그 이유야 어떻던 아직도 상당히 많은 탑이 남아 있어서 보는 사람의 눈을 즐겁게 하고 있으니 이태리 사람은 좋은 조상 덕분에 톡톡히 덕을 보고 있는 것 같다.

 

어제 베니스에서 수많은 관광객에 치어서 기분을 잡치고 볼로냐에 도착했는데, 이 도시는 의외로 볼 것도 많고, 분위기도 차분하여 이곳에 오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노천 카페에 앉아서 맛있는 볼로냐 음식과 와인을 즐기면서 지나가는 선남선녀들을 구경하고 있노라니, 역시 사람 구경이 제일 재미 있고, 이런 것이 여행하는 재미가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구경을 잘 했으니 이제는 먹는 차례, 아침에 인터넷에서 유명한 식당 주소를 3 ~ 4개 챙겨서 나왔는데, 그중에서 제일 가까운 식당에 가보기로 한다.  한 5분 걸어서 도착한 식당은 무슨 이유인지 문이 굳게 담겨 있다.   이 사람들이 망했나?  아직 식당을 여는 시간이 아닌가? 아니면 휴가를 갔나? 하고 의아해 하고 있는데 마침 지나가는 할머니에게 몰어보아도 어깨만 으쓱하고 도무지 상황을 파악할 수가 없다.              


할 수 없이 조금 더 걸어서 다음 식당에 가서 자리를 잡는다.  이 식당은 상당히 규모가 크고 웨이터들이 모두 앞치마를 두르고 나비넥타이를 한, 상당한 포스를 느끼게 하는 곳, 따라서 가격도 만만치 않을 것 같다.  지방 특산이 소시지, 볼로냐식 미트볼, 파스타를 시키는데, 종업원들 영어가 상당히 수준 급이다.  원래 이탈리아에서는 말이 통하지 않아서 손짓 발짓, 보디 랭귀지로 의사 소통하는 재미도 상당히 있는데.....  너무 쉽게 주문을 마치니 조금 싱겁다.  


잠시 후 나온 음식은 그야말로 천하진미, 우리가 서울에서 먹던 볼로냐식 소스는 오리지날에 이것 저젓 잡탕식으로 섞은 것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다.  양념은 가급적 적게 하고 재료의 맛은 충분히 살리되 토마토와 바질의 은은한 풍미를 내게 하는 것은 오랜 전통과 자부심에서 온 것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함께 곁들인 키안티 와인과도 그야말로 찰떡궁합이다.  음식의 양도 만만치 않다.  원래 음식이 맛있는 곳은 양이 많은 법, 늦은 점심을 마치니 배가 터질 것 같다.  메뉴를 보니 내가 좋아하는 돼지고기, 족발 비슷한 음식도 있는 것 같은데, 이렇게 배가 부르니 저녁 때 와서 다시 거창한 식사는 하지 못할 것 같다.   


이 도시 사람처럼 뚱보가 될지언정 정말 오래 머물면서 이 도시의 맛있는 음식을 즐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