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와인
<내 앞에 앉아 있는 바스크인의 얼굴은 오랜 세월 햇볕에 그을러 마치 가죽 안장 같은 색깔을 띄고 있었다.
그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농부들이 흔히 입는 작업복을 입고 있었고 갈색으로 그은 그의 목에는 굵은 주름이 있었다. 그는 몸을 돌려서 빌에게 와인을 담은 가죽부대를 건넸다. 빌은 그에 대한 답으로 우리가 가지고 있던 와인 병을 그에게 건넸다.
그는 빌의 얼굴 앞에 검지 손가락을 저으면서 와인 병을 빌에게 돌려주고는 자기의 와인 부대를 빌에게 들이댔다. “자! 마셔요!” 빌은 와인 부대를 들어올려서 주둥이에서 뿜어 나오는 와인을 마셨다.
빌이 와인을 마시고 부대를 내려 놓았을 때는 와인 몇 방울이 그의 턱을 따라서 흘러내렸다. >
어네스트 헤밍웨이의 ‘해는 또 다시 떠오른다.” 의 한 구절입니다.
프랑스 와인이 귀족적이고 절제된 격식에 맞게 차려진 음식과 함께 즐기는 세련된 음료라면 스페인 와인은 농부들이 투박한 음식과 함께 여러 사람이 병을 돌려가면서 마시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0여년 전에 업무상 스페인에 갈 기회가 자주 있어 마드리드, 세비야, 살라망카, 바르셀로나 같은 큰 도시에서 스페인 고객들과 식사하면서 와인을 마실 기회가 많았는데 와인을 까다롭게 고르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대충 그 지역의 대표적인 와인을 고르거나, 많은 경우에는 식당에서 우리나라 막걸리처럼 질그릇이나 유리 핏쳐에 따라서 파는 토속 와인을 마신 것 같습니다.
스페인의 대표적인 음식으로는 새끼돼지를 통째로 군 것(Cochinillo Asado), 향신료와 함께 요리한 쭈꾸미(Pulpo a la Gallega), 하몽(Jamon)이라고 불리는 돼지다리를 훈제한 후 말린 햄, 저 유명한 빠에야(Paella; 쌀을 여러 해산물과 함께 익힌 것)등이 있습니다.
이 음식들은 맛이나 질감이 강하여 프랑스의 섬세한 와인은 음식의 맛에 압도 당해서 와인과 음식의 균형을 잃을 것 같고, 가장 좋은 방법은 식당에서 권하는 그 지방의 와인을 마시는 것 같습니다.
보통 식당에서 마시는 와인은 제 느낌으로는 처음에 자극적이고 조금 텁텁하지만 뒤에 남는 여운은 약한 것 같습니다. 스페인 시골에는 나무로 투박하게 만든 긴 탁자와 등받이가 없는 긴 걸상에 식당에 들어오는대로 차곡차곡 앉아서 식사하는 경우가 많은데 왁자지껄한 분위기에서 그 지방의 토속음식과 와인을 맛보는 것은 일류 레스토랑에서 얻는 즐거움 못지 않습니다.
물론 값은 1/5도 들지 않고요. 요즈음은 보도에 의하면 소득 수준이 점점 높아지고, 개인의 취향도 다양해져서 세련된 와인을 찾는 사람이 늘어서 고급 브랜드의 마케팅에도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고 합니다.
스페인은 아탈리아, 프랑스에 이은 세계 3위의 와인 생산국 입니다.
위에서 설명드린 바와 같이 스페인 와인은 주로 지역에서 소비하기 위해서 생산되었고 대형 브랜드를 개발하여 세계적으로 판매하기 시작한 것은 30년이 채 되지 않습니다. 스페인의 대표적인 와인 산지는 북부의 리오하(Rioja), 리베라 델 두에로(Ribera del Duero), 프리오라토(Priorato), 카바(Cava)등이 있습니다.
중부와 남부에서도 와인은 생산하지만 해외수출은 미미 합니다. 북부에서도 리오하에서 19세기부터 수출용 와인을 생산하기 시작하였고, 다른 지역은 와인들은 최근에야 다른 지역이나 국가에 소개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어느 제품이나 마찬가지이지만 어떤 제품을 해외에 소개할 때는 품질 수준을 입증할만한 기준이 있어야 소비자의 신뢰를 얻을 수 있습니다. 스페인은 와인의 품질을 표준화하기 위하여 나름대로 여러 가지 와인 등급을 정하여 품질관리를 하고 있기는 하나 보르도처럼 유명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리오하에서는 주로 템프라니요(Tempranillo)라는 포도가 재배됩니다. 템프라니요는 로마시대부터 스페인에서 자생하는 포도인데 색갈이 짙고 껍질이 두껍지만 산도와 당도는 비교적 낮은 편입니다.
이 포도는 스페인 북부의 고지대의 기후에 적합하지만 따뜻한 지역에서도 잘 자라 스페인 전역에서 재배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기후의 변화에 민감하여 균일한 품질을 유지하는데 어려움이 있으며 이것이 스페인 와인이 그때 그때 지역에서 소비하기는 좋지만 고정된 브랜드 이미지로 세계적인 마케팅이 어려웠던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요즈음은 스페인에서도 세계적인 와인 브랜드를 개발하기 위하여 품질등급의 실시, 포도의 품종개량, 규모 있는 포도경작 및 와인생산 등의 현대적인 와인 생산과 마케팅에 많은 노력을 투자하고 있는 중 입니다.
산도와 당도가 낮은 템프라니요의 특성 때문에 와인제조 시에는 주로 가르나챠(Garnacha), 카버네 소비뇽, 그라시아노(Graciano)등 강한 특성의 와인과 블랜딩하고 있습니다.
몇 년전에 친구로부터 소개 받아서 리오하의 대표적인 Winery인 마르케스 데 리스칼(Marques de Riscal)의 와인을 맛보게 되었습니다.
설명을 들어보니 1860년대에 설립되어 스페인 최초로 보르도 와인의 생산기법을 도입했고 유럽의 유명한 와인 콘테스트에서도 수상한 경력이 있고 전 세계적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는 브랜드라고 합니다. Winery에 호텔도 있고, 그 지역에서는 유명한 식당도 있다고 합니다.
이런 식당에서 신선한 토속 음식과 와인을 곁들여 식사하면 정말 좋을 것 같습니다. 제가 마신 와인은 2003년산 Reserva입니다. Reserva는 일반 와인 보다 오래 오크통에 넣어서 숙성시키기 때문에 보다 좋은 품질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스페인에서 Reserva라 함은 최소 3년을 오크통이나 병에서 속성한 후 출시하는 와인을 말합니다. 2003년은 포도 작황이 좋은 해이기 때문에 와인 맛도 좋을 것 같습니다.
와인의 색깔은 진한 편으로 핑크 빛보다는 우아한 적벽돌의 고전적인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맛은 과일향기보다는 유칼리 나무 또는 소나무의 향기가 조금 우세하고 오래된 좋은 가죽, 초콜릿, 시가의 그윽한 향기가 느껴졌습니다.
3만원 중반의 와인치고는 상당한 수준으로 생각됩니다. 전반적으로 약간 무거운 남성적인 느낌이 들었는데 어떻게 표현을 해야 할까요, 바닥에는 자줏빛의 넓은 타일이 깔리고 벽은 하얗게 칠해져 있고, 중세기사의 갑옷과 창, 칼등 무기들이 멋있게 진열되어있고 한쪽 벽에 서있는 육중한 나무서가에는 두꺼운 고서들이 진열되어 있고 카펫이 깔린 거실 중앙의 오래된 가죽소파에 앉아서 품위있게 나이를 먹은 스페인 신사와 시가를 피우고 있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제가 그 동안 알고 있던 텁텁한 스페인와인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이고, 스페인에도 이런 세련된 와인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이 와인을 맛보고 이따금 다른 스페인 와인도 찾게 되었습니다.
앞에서도 설명 드렸듯이 스페인은 자국의 와인의 수출을 늘리기 위하여 품질의 균일화, 포도품종개선 등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다고 하니 인근 프랑스나 이탈리아 와인과 경쟁이 되어서 전반적인 와인가격이 떨어지기를 희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