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히로시마

Algeruz 2012. 3. 30. 19:39

히로시마(廣島)는 일본 혼슈우의 남쪽 끝의 세토나이가이(瀨戶內)에 임해있는 일본의 대표적인 공업지역 중의 하나이다. 원래 임진왜란을 일으켰던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참모인 모리 데루모토라는 다이묘(大名 - 봉건영주)가 1589년에 세운 도시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전쟁말기에 병사하자 2인자였던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반대파 간에 권력투쟁이 벌어지게 된다.  1600년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반대파를 격파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쇼군이 되고, 그 후손들은 300년 가까이 대대로 쇼군(將軍)의 지위를 물려 받으며 일본을 지배하게 됩니다. 이 권력투쟁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반대파 였던 히로시마의 모리 데루모토는 숙청을 당하고 이 도시는 아사노 나가아키라라는 다이묘가 통치하게 되는데 히로시마는 아사노 가문의 지배하에 꾸준히 발전하며 1870년 메이지 유신 때까지 평화를 누리게 된다.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 정부는 하로시마 현으로 행정구역을 개편하고 우지나에 항구를 건설하여 러일 전쟁시 주요한 군사 및 보급기지로서의 역할을 하게한다. 이후 중일전쟁 때도 군수기지로서의 역할을 하였고, 이차대전시에는 지역 군사령부가 이 도시에 주둔하고 있었다.  히로시마는 나가사키와 함께 원자폭탄이 투하된 도시로 45년 8월 7일 원폭이 투하되어 도심의 대부분의 흔적도 없이 파괴되었고, 폭탄 투하 직후 약 8 ~ 9만이 사망하였으며, 45년 12월 말까지 5 ~ 6만명이 후유증으로 사망하는 대참사를 맞게된다.  이차대전 종전 직후 히로시마는 연합군의 점령지역으로 관리되었고 1951년 미일 평화조약이 되고야 일본정부에 반환되었다.  

이러한 비극적인 근세사를 겪은 히로시마는 정부의 지원과 각종 감세 정책으로 복구사업이 활발하게 진행되었으며, 지금은 일본에서 가장 깨끗하고 살기 좋은 도시 중의 하나가 되었다. 히로시마는 일본의 대표적인 자동차 회사 중의 하나인 마즈다 자동차사의 본사와 공장이 위치하고 있어서 자동차 부품산업이 주위에 발달되어 있다.

히로시마의 명물은 오코노미야키라는 음식인데 우리나라의 파전과 비슷한 음식인데 파는 들어가지 않고. 전문식당에서 철판이 설치된 바에서 손님 앞에서 직접 요리를 해주는 것이 보통이다. 히로시마식 오코노미야키는 먼저 철판에 계란을 부치고 그 위에 양배추, 숙주, 베이컨, 해물 등등을 차례로 올려서 요리하는데, 여러가지 재료를 섞은 후 부치는 오오사카식 오코노미야키와는 또 다른 풍미를 지닌다.

히로시마에는 과거 다이묘가 살았던 히로시마 성, 원폭이 투하된 곳에 세워진 평화공원, 부근의 미야지마(宮島)라는 섬의 이츠쿠지마 신사가 유명하고 신간센으로 규우슈우의 후쿠오카 지역으로의 접근성도 매우 좋다.

 




측면에서 본 히로시마성. 일본의 성은 방어를 위해 주위에 해자(垓子)를 건설 합니다.



히로시마 성의 입구의 누각.  이 성은 이차대전 때 파괴된 것을 복원한 것입니다.


성의 입구



성안의 호국 신사


호국신사의 내부 - 사진이 영 아니군요.  휴대전화로 찍은 것이니 양해 바랍니다.



성 전면, 새벽이라 들어가지는 못했읍니다.



거리의 신사



성에서 약 20분 정도 걸어오면 히로시마 평화공원이 있읍니다.  교과서에서 많이 본 원폭돔.



사망자를 추모하고 평화를 기원하는 종이학...



피폭지점에서 발견된 신원미상의 유해를 합동으로 안치한 봉분.



시내 중심가인 혼도리, 부근에 값싸고 맛있는 식당이 많습니다. (퍼온 사진)

몇년전에 부근의 전통 일본식당에서 일본인 친구를 초대해서 근사하게 저녁식사를 한 적이 있읍니다. 그런데 계산을 하려고 카드를 냈더니 아니, 이런 고급식당에서 카드를 안받는다는군요. 그런데 마침 제가 가지고 있던 현금이 별로 없어서 손님이 계산한 적이 있읍니다.  지금도 그 생각을 하면 등골이 오싹하고 일본의 식당에 가면 카드를 받는지 미리 꼭 확인하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인근 미야지마 섬의 이츠쿠시마 신사의 도리.  밀물 때 아래 부분이 바닷물에 잠긴다고 합니다(퍼온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