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찰의 힘
골프장에서 티샷을 할 때 마음 속으로 '해저드를 조심해' 라는 내면의 목소리에 집중해 평소 같으면 쉽게 넘길수 있는 거리의 연못에서 평정심을 잃어 이상하게 몸에 힘이 들어가고 스윙의 균형을 잃어 어처구니 없이 공에 물을 빠뜨리곤 한다. 그러다 보면 샷을 할 때마다 머리속이 복잡해지고 생각이 많아져서 완전히 게임을 망치는 경우도 왕왕있다.
이때 우리의 뇌는 그립, 허리의 각도, 발의 폭, 테이크 백, 스윙 아크, 스윙 리듬, 어드레스 방향, 중간 목표, 스윙 스피드 등등 수많은 변수를 점검하려고 한다. 이렇게 머리 속에 생각이 많은데 어떻게 자연스러운 스윙을 해서 공을 원하는 방향으로 보낼 수 있겠는가? 우리의 뇌가 여러가지를 점검하려고 하는 이유는 자신도 모르게 좋은 스윙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골프 샷은 자연스로운 스윙으로 공이 페어워이 중앙을 빨래줄 같이 뻗어 나가는 즐거움 대신에 여러 변수를 점검해야 하고 실패하면 큰 대가를 치루는 어려운 과제로 변하게 된다.
직장에서도 이 같은 상황은 왕왕 발생한다. 상사가 자꾸 실수에 대해서 지적하여 그 실수를 너무 의식하면 창의력과 성과가 떨어지게 된다. 역설적으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일 자체는 즐거운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매일 매일 10시간 가까이 직장에서 보내고도 멀쩡할 수 있겠는가. 일이 괴로워지기 시작하는 것은 누군가의 감독을 받고, 문제점을 지적받아서 자신감이 줄어들고 자신에게 가장 자연스럽고 즐거운 방법과는 다른 방법으로 일을 처리하도록 강요받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이유로 상사는 부하를 무능한 사람으로 낙인찍거나 성과를 핑게삼아서 조직원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미국의 한 병원에서는 내원한 환자들이 대기실에서 기다리는 시간을 줄이는 개선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환자, 간호원, 접수요원의 동선과 업무절차를 조사하고 여러가지 개선안을 내서 실시했으나 좀처럼 원하는 개선효과를 거둘수 없었다. 결국은 외부에서 전문가를 고용하여 해결 할 수 밖에 없었다.
그 전문가는 현재까지의 모든 개선활동을 중지시키고 관련 직원으로하여금 목표시간(20분) 이상 기다리는 환자가 몇명이나 되는지 관찰하여 매일 퇴근 전에 자신의 관찰 결과를 병원내 게시판에 기입하게 하였다. 이 병원은 매우 바쁜 곳으로 접수요원 외에는 정확한 대기시간을 알 수 없었고, 일반 간호원, 의사, 사무직원들이 할 수 있는 방법은 이따금 대기실에 들러 상황을 보고 추측하는 것이었다. 직원들은 병원의 지시대로 부담감을 갖지 않고 단순히 관찰만을 하였고, 놀랍게도 특별한 노력이 없이도 장기대기자가 3일만에 반으로 줄어들었고, 이후 2주간 평균 장기대기자는 하루 15명에서 1명으로 줄일 수 있었다.
회사에서의 개선은 보통 현재의 방법이 잘못되었음을 전제로 시작된다. 그런데 인간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회사는 외부의 컨섵턴트를 고용하여 객관적인 상황을 파악하여 문제점과 개선에 필요한 행동을 정한다. 하지만 실제의 개선행동은 지금까지 잘못을 저지른 조직의 구성원들이 해야하는데 사람은 특별한 동기나 인센티브 없이는 지금까지의 자신의 행동을 바꾸지 않는다. 그래서 회사는 조직원의 새로운 행동을 강제하는 별도의 조직을 만들어 감독을 하게되는데 이 과정에서 경영진의 매우 강력한 의지가 없으면 새로운 행동은 흐지부지되고 컨설턴트에게 거액은 금액을 지불하고 시작한 프로젝트는 용두사미가 되고 만다.
위 병원에서의 사례에서 주목할 점은 조직원들의 행동에 잘못이 있다는 전제가 없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는 것이다. 직원들을 비판하지 않고 단지 대기실을 상황을 관찰하게 함으로써 무의식적으로 장기대기환자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했는데, 이 새로운 인식은 관련자로 하며금 자신도 모르게 그들의 업무 프로세스에서 환자를 대기시키는 요인을 제거하게끔 하였고, 여러 관련자들의 이런 자발적인 행동은 전체적인 프로세스의 개선으로 이어져 환자의 대기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었다. 나중에 병원 측은 개선 후에 직원들의 행동의 변화를 기록하여 매뉴얼화 하려고 했으나 개선행동이 너무나 작고 다양해서 일일히 규정화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문제가 생기면 관련자를 비판하지 않고 단지 주요 변수를 관찰하는 방법으로도 상당한 개선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교훈을 얻었다.
코칭의 실제에 있어서 개선 행동의 목표를 정하고도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하는데 이럴 때 코치나 상사가 조바심을 갖지 말고 이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행동, 상황을 관찰함으로서 자연스럽게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이럴 때 코치의 역할은 고객이 즉각적으로 개선 행동을 실시하도록 격려를 할 것인지 고객이 좀더 시간을 가지고 마음 속의 방어기제를 제거할 수 있도록 기다려 주는 것이 좋을 것인지 현명한 판단을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