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아나바시스 - 일만명의 퇴각, 크세노폰

Algeruz 2013. 11. 8. 09:43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 세계사 시간에 이 책의 이름을 '일만명의 퇴각'이라고 배웠는데 정확한 제목은 Anabasis, 그리스어로는 '높은 곳으로 올라가다'라는 뜻이다.  이 책의 중반에 현재의 터키와 이라크의 국경지역의 산악지역을 넘어 탈출하는 장면이 묘사되는데 저자에게는 가장 어렵고 기억어 남는 순간이었던 것 같다.


시대 배경은 페르시아 왕 크세르크세스의 그리스 침략이 실패로 돌아간 후 2 ~ 3 세대가 경과한 BC 400년 경.  살라미스 해전에서 크세르크세스 대함대를 격파한 아테네는 그리스 도시국가의 맹주가 되어서 아테네의 민주주의의 꽃을 피우나 곧바로 경쟁상대인 스파르타와의 기나긴 전쟁에 들어가게 되고 여기서 스파르타가 최후의 승자가 되고 아테네는 이후 수천년간의 침체기에 들어가게 된다.  


한편 크세르크세스가 죽고 페르시아 조정에서는 그 후손들 간의 왕위계승을 위한 권력투쟁이 계속되고, 페르시아 중앙정부의 통제가 약해진 틈을 타서 그리스 인들은 다시 페르시아 지배 하의 소아시아의 이오니아와 흑해 연안의 식민지에 진출한다.  이렇게 이주하는 그리스인 중에는 페르시아 지역 토후를 고객으로 하는 용병들도 상당수였다. 


한편 형제간의 권력투쟁에서 승리하여 왕이 된 크세르크세스의 손자 다리우스가 죽고 그의 큰 아들인 아타크세르세스가 왕이 되었는데, 그는 자기보다 똑똑하고 부하들의 신망을 받고 있던 동생 키루스를 조정으로 유인하여 죽이려는 계획을 세웠으나 당시 소아시아 지중해 연안에 주둔하고 있던 키루스는 이 음모를 사전에 감지하고 자기 지역의 귀족과 군대를 규합하여 형의 왕권에 도전하고 수도인 수사로의 원정에 나선다.  그런데 이 원정에는 약 만명의 그리스 용병도 참가하게 된다.


키루스 군의 원정은 순조롭게 진행되어 오늘 날의 바그다드 부근까지 진출했는데 여기서 그는 아타크세르크세스의 군대와 결전을 벌인다.  전투는 순조롭게 진행되었으나 키루스는 이 전투에서 뜻밖의 죽음을 당하고 원정군은 목표를 상실하게 된다.  키루스는 죽었지만 전투에서 선전한 그리스 용병들은 페르시아와 협상을 하여 그리스까지의 퇴로를 보장받고 수천킬로의 퇴각 길에 나선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평화협상을 위하여 페르시아 군 진영을 방문한 그리스의 지휘관들이 죽음을 당하고 그리스 군 진영을 혼란에 빠져 항복을 해서 목숨 만은 부지할 것인가, 끝까지 싸울 것인가 방향을 정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고 있을 때 당시 친구의 초청을 받아서 이 원정에 참여했던 크세노폰이 동료들을 설득하여 그리스로의 탈출을 결정한다.


이후 크세노폰은 오늘날 이라크 중심부에서 터키의 흑해연안의 그리스 식민지까지의 수천킬로의 탈출을 감행하면서 끊임없이 추격해오는 페르시아 군에 맞서 싸우는 한편 지역의 적대적인 부족들로부터 식량과 보급품을 조달해야 하는 어려움을 극복하고 대부분이 용병을 목적지까지 도달시키는데 성공한다.   이 과정에서 원래 지휘관이 아니었던 그는 부하들을 통솔하기 위해서 목표를 정하는 과정에서 동료 지휘관을 참여시키고, 일단 방향이 결정되면 전군을 소집하여 그 내용을 공유하고 다시 휘하 군사들간의 토의와 투표로 의사 결정을 하여 결속력을 강화하여 수많은 난관을 돌파한다. 


의사 결정을 위하여 토의를 하는 장면이 수없이 반복되는데 그 부분만 읽으면 이 책이 현대의 경영서적인인지 2400년 전에 쓰여진 고전인지 잘 구분이 되지 않을 때가 많다.  수천년 전의 인류 선조들도 21세기 현대인과 꼭 같은 수준의 지성을 보유하고 있었음을 웅변으로 보여주고 있다. 한편으로는 종교의식도 의사결정의 중요한 과정이었는데 보통 짐승을 제물로 바친다.  그리고 짐승을 도살할 때의 피가 흐르는 모양 등 여러가지의 조짐을 통하여 앞으로 작전의 성공과 실패를 예상하는 장면도 많이 나오는데 조금 전까지 그렇게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토의를 하던 등장인물들이 동물희생의식 같은 미신을 절대적으로 신봉하는 모습을 보면 인간은 정말 아이러니한 동물이 아닐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이와 한편으로는 아무리 학식과 지성이 풍부해도 결국은 인간은 감정의 지배를 받고 어딘가 의지할 큰 힘을 필요로 하는 존재라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온각 역경을 뚫고 비교적 안전한 지역에 도착한 그리스 인들은 여기서 부터 그들 특유의 내분에 휩싸이게 된다.  우선 흑해 연안에서 육로로 고국에 돌아가느냐, 배를 수배해서 돌아가느냐 부터 시작해서 당시 그리스와 적대관계였고, 흑해와 발칸반도 남쪽에서 세력을 형성하고 있던 트라키아와 전쟁을 하느냐 협력을 하느냐, 보급품을 확보하기 위해서 어디글 공격하는가, 집에 빈손으로 가야 할텐데 어디서 전리품을 확보할 것인가 등등....  일단 안전이 확보된 인간은 보다 높은 수준의 욕구를 갈망하기 마련인 것..


여기서 어떻게 되었는지 자세한 설명이 없고 그리스인들은 스파르타의 장수 티브론의 원정군에 합류하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그는 나중에 어떻게 되었을까?   그는 정치적인 이유로 아테네로 돌아가지는 못했지만 이 책을 쓸만큼 시간적, 경제적 여유가 있었음이 틀림이 없었을 것 같다.  그의 말년에 대해서는 자세한 기록이 없어서 아쉬운데, 하여간 이 스토리는 수십년 후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의 동방원정의 지침서로 활용된다.  그는 문장가로도 유명하여, 오랫동안 학생들의 그리스어 교재, 현대에도 경형학의 리더십 연구나 고대 그리스 철학의 참고서로 아직도 많이 활용되고 있다고 한다.